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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수많은 관세음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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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11-30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실보사 설법/신행담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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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리라이팅=황보정미 리라이터 황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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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2 13:07 조회 2,9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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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수많은 관세음보살님
불각지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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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각지 교도


결혼 전에 건강이 아주 나빴습니다. 제 인생에는 아이가 없다는 말도 들었 습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자식 과의 인연이라는 것이 저의 의지로 닿 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루지 못한 인연으로 괴로워하는 저를 친정어머니께서 가엾게 여기어 총지종 입교를 권유하셨고 아주 가벼 운 마음으로 염주만 손에 달랑 쥐고 절 에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런 하루들 이 지나가면서 저의 그 가볍던 마음이 정각원 전수님의 설법으로 무게를 달 리 해갔습니다. 전수님의 쉬운 설법으 로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었고 가 슴속에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총지종 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는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지 종 수행의 시작으로 그토록 원했던 아 이와의 인연을 부처님께서 이어주셨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쁨도 잠시 달이 차갈수록 제 몸이 워낙 약한 지라 위험할 수 있으니 병원에서는 외 출을 삼가고 집에서 안정을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점차 절에 나가는 횟 수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 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 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전수 님께서 제게 다가와 말씀해주셨습니 다.“건강한 아이를 순산하시려면 행사 도 많이 나오시고 염송도 많이 하시는 게 좋습니다.” 라며 제 손을 꼭 잡아주 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찜찜했던 마음 을 후련하게 털어버리고 절에 더 꾸준 하게, 성실하게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는 말릴 것이 뻔하다 생각하여 조금 무 모하지만 검진 날에도 병원엘 가지 않 았습니다. 오직 스승님과 부처님만을 믿고 의지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저는 무 탈하게 첫째 아이를 순산하였습니다. 이후 둘째 순산 후에는 생활고에 시 달렸습니다. 남편은 집 밖으로 나돌기 만 하였습니다. 원망도 하고, 싸움도 하 고, 어느 순간은 잠깐 참기도 하였습니 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 은 없었고, 결국 저는 부처님의 도움으 로 제 안에서 답을 찾아냈습니다. 이 모 든 것이 내 과거 전생의 업보라는 것을 요. 

그런 생각이 들자 참회의 눈물만 흘 렀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생에 내가 닦을 수 있는 만큼은 다 닦고 가 자. 그래서 다음 생은 이번생보다 쌀 한 톨만큼만 낫게 살수 있다면 그걸로 만 족한다. 오직 이 삶을 인욕과 하심으로 견디고 버티어내자. 그 뒤 저는 남편에 게 정성을 다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남 편을 미워하면 자식이 바르게 크지 않 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인내로 삶을 견디던 어느 해에, 남편이 변한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남편도 느 꼈습니다. 

남편이 제게 말하길 아이들 대학을 다 보내려면 우리 함께 작은 포 장마차라도 해야 할 텐데, 하며 제 손을 꼭 잡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 눈빛 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변 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해에 돌아갔 습니다. 지금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아이들을 준 그 이기에 가는 길엔 그저 고마움만이 남았습니다. 남편은 저에 게 인내와 참회와 기쁨을 안겨준 관세 음보살이었습니다. 제 인연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참 많 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하여 전전 긍긍하다 우유배달 일자리를 얻게 되 었는데 자전거를 배워야했습니다. 서 원당에 들러 염송을 한 뒤 이웃에서 자 전거 한대를 빌려 동네 초등학교를 찾 았는데 초등학생이 자전거에 끌려 갈 팡질팡하는 저를 도와주어 금세 배우 게 되었습니다. 

과자값을 쥐어주며 고 마움을 표했는데 필히 우리 동네 학생 인지라 다시 만날 것 같았으나 그 뒤로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그 학생 덕에 자 전거를 몰면서 두 아이를 열심히 기르 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감 사한 인연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모든 정리를 함께 도와준 친구입니 다. 치매가 오셔서 몸져누워 계신지 꽤 되신 시어머니의 49일 불공을 마치는 날 여느 때와 같이 고이 주무시는 모습 에 아무 생각없이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데 친구가 연락도 없이 찾아왔고 시어 머니를 뵙고는 저의 등을 치더니 시어 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이었 습니다. 너무도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 르고 있으니 선뜻 자신의 상조를 내어 주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저를 물심 양면으로 도와주어 시어머니를 편히 보내드렸습니다. 

이 인연들 말고도 시 장에서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주는 상 인, 비가 몹시 오는 날 정류장이 아님에 도 집근처에 세워준 버스기사, 불단에 놓을 국화화분 두개를 들고 가는 저에 게 다가와 서원당 불단위에까지 놓아 주고 홀연히 갈길 간 젊은 청년 등등등 셀 수조차 없는 인연들 덕에 저는 신명 나게 수행정진중입니다. 

저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짓지 못 했다 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을 만 나고 나서 지나온 생을 돌이켜 보니, 가 는 곳마다 많은 관세음보살을 만났고 좋은 스승님들을 만나서 늘 숙제를 해 결하였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많은 교도님들도 부처님의 공덕으로 수많은 관세음보살을 만나 인생의 고 난역경을 헤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무 엇보다 제 인생에 헤아릴 수 없는 도움 을 주신 모든 관세음보살님들에게 감 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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