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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마다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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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2-28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 신행담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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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황보정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리라이팅=황보정미 리라이터 황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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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15:02 조회 4,2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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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 마다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
정두순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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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순 교도


한 때는 저 역시도 많은 풍파를 겪고 힘 에 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 다. 하지만 총지종을 만난 후로 법문에 따라 살다보니 하는 일마다 참 잘 되고 번창했습니다. 저의 진귀한 경험을 보살 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가장 큰 풍파는 각자님이 운영하던 쥐 포 가공 공장이 망한 일이었습니다. 잘 될 줄만 믿고 각자님의 퇴직금을 포함 하여 많은 돈을 투자하였는데, 순식간 에 공장이 쓰러졌습니다. 각자님이 사장 이다 보니 모든 것을 책임질 수밖에 없 었습니다. 이미 망해버린 공장을 붙잡고 있다가는 더욱 더 감당이 안 될 것 같기 에 청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살고 있던 집도 팔고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팔 수 있 는 것은 죄다 팔아 가면서 공장을 정리 하였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단칸방 하 나에 겨우 월세를 내며 사는 형편이 되 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아들네 친구의 어머니한테서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

사연인즉슨 평소 넉살 좋은 아들은, 친구네 집에서 밥도 곧잘 얻어먹고 다녔 는데 요즘에는 도통 밥도 안 먹으려고 하고 낯빛이 많이 어두워서 걱정이 되었 다는 겁니다. 의기소침해졌다는 아들 이 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이 런 저런 사정을 털어놓자, 물었습니다.

“그럼 내가 다니는 절에 한번 가보지 않을래?”

그 곳은 바로 정각사였습니다. 일요일 을 맞춰서 가보니, 가장 먼저 눈길을 사 로잡은 것은 수많은 신발들이었습니다. 서원당 안에는 신발들의 주인인 많은 보 살님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부 처도 없는 그 곳에서 막대기를 들고 왔 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였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막대기가 명패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도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여기에 어떤 힘이 있긴 있으니 이렇게 모였겠 지.’

살림이 나아지길 간절히 바랐던 저 는 희사금을 차비로 대신하여 열심히 불 공에 매진하였습니다. 자면서도 옴마니 반메훔을 읊조릴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 습니다. 그 즈음 각자님의 옛날 직장 동 료가 고물장사를 제안해왔습니다. 울산 에서 시작하기 좋다고 그랬습니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 사를 간다는 게 조금 겁이 났습니다. 전 수님에게 조언을 구했고, 일단 법문이 나오는 것을 보고 따르기로 했습니다.

“일단 울산으로 가는 쪽으로 해 보도 록 하죠.”

그렇게 막상 울산에서 고물장사를 시 작하였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고물로 트 럭을 한 차 채워야 팔 수가 있는데 그 한 차를 채우는 게 어려웠습니다. 법문 이 나오는 대로 울산에 왔지만 살림살이 는 나아지지 않았고 그게 그렇게 서러웠 습니다. 서러움에 눈물이 나면서도 불공 을 건너뛰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내 마음을 살펴주고 있겠지, 하는 믿음으로 다라니에 의지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 느 날 울산 실보사에서 자성일 불공을 마치자마자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 다.

“울산대학교 앞에서 하숙 좀 해볼래?”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이번에도 법 문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결과가 상당 히 좋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들뜬 마음으 로 하숙을 시작했습니다.

각자님과 저는 아들을 키우는 마음으 로 하숙집을 꾸렸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만 끼니를 차려주는 다른 하숙집과 달리 시험기간에는 야식과 간식도 넉넉하게 제공을 하였습니다. 끈기가 적은 알랑미 로 밥을 지으면 배가 금방 꺼질 것 같기 에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좋은 쌀을 썼습 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서인 지, 방이 빈 적이 없었습니다. 잘 되지 않 던 고물장사를 아예 접고 하숙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자신의 하숙 차례가 되길 기다리며 대기하는 사람이 생길 정 도로 성황이었습니다. 각자님이랑 저랑 둘이서는 일이 감당이 안 되어 실보사에 마음 맞는 보살님과 함께 일을 하며 하 숙집을 늘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밥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 합니다.”

자성일이면 꼬박꼬박 절에 나가 감사 의 마음으로 염주를 돌렸습니다. 법문이 시키는 대로 울산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총지종을 만난 후 마음이 그렇게 든든 할 수가 없었고 실제로도 모든 일이 다 잘 풀렸습니다. 가족들도 어느 하나 빼 놓지 않고 모두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습 니다.

지금은 아들네 식구도 오순도순 잘 살 고, 딸네 식구도 참 화목하게 살고 있습 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으며, 행여나 고 난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총지종과 법문 이 있으면 그다지 두려울 것도 없습니 다.

살아가는 데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지 만, 힘든 부분이 있다면 꼭 부처님께 여 쭈어보고 법문대로 행하시기를 바랍니 다. 저의 경험을 참고하시어 언제나 평 안한 신행생활 하시기를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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