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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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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7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06-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의 선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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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화령 정사 / 철학박사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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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6:00 조회 3,8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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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의 선정 (39회)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
미얀마의 사념처 수행

(지난호에 이어)

호흡의 주시와 관찰만으로도 불과를 이룬다

들숨에 따라 복부가 불러오면, '일어남, 날숨에 따라복부가 꺼지면,,사라짐,하면서 매 순간의 일 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린다. 이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때 호흡은 자연스럽게 해야 하며 의도적인 호흡은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된 다. 호흡을 통하여 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수 반되 어 생겨나는 감각들을 하나도 빠뜨리 지 말고 세밀하고 주의 깊게 일어나는 즉시 바로 알아차 리되 해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복부 의,일어남 • 사라짐에 마음을 집중하고 알아차리 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모든 생각과 몸 의 느낌들도 생겨나는 즉시 바로 알아차리고 이 것이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다서 호흡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몸의 어느 부분이 가려울 경우가 있 다. 그럴 때는 가려움을 주시한다. 그러면서 그것 이 어떻게 일어나고 머물렀다가 사라지는지를 주 시하면서 알아차린다. 통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통증이 일어나면 통증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그것을 주시하면서 통증이 일어나 고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알아차린다. 그 러다가 다시 그러한 현상이 사라지면 호흡에 따 른 복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알아차린다. 이 러한 훈련을 반복하면 어떤 행위를 할 때에도 그 러한 행위를 하기 전에 의도가 발생하는 것을 알 아차린다.

주시와 알아차림에는 좌선과 행선, 와선의 방 법이 있다. 행선의 도중에 잠깐 멈추게 되었을 때 에도 주시와 알아차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을 굳이 표현하자면 입선(立禪)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앉아서 호흡을 관찰하는 좌선을 하다가 걸으면서 하는 행선을 병행하면 피로도 풀 수 있 고 훨씬 효율적이다. 행선에서는 걸음을 걷기 전 에 일어나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발이 앞으로 나 아가며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모든 느낌 하나하 나를 주시하며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와선은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기 직전에도 호 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물론 호흡만이 아니라 중 간중간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주시하고 알아차려야한다.

그러다가 다시 호흡에 따른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기울이며 관찰한다. 아나빠나사띠를 중심 으로 하는 위빠싸나 수행은 언제 어디서든 끊임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좌선과 행선, 와선을 적절히 활용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 는 알아차림의 노력을 기울이면 우리의 삶을 근 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위 빠싸나는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일상생활의 모든 행주좌와, 기거동작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으 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단지 앉아있거나 걸어다 니는 동안에만 수행한다고 생각하면 위빠싸나 수 행의 근본목적을 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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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마하시 선센타


지관균등에 의한 참된 지혜의 증득 일상생활이 수행으로 연결되어야 위빠싸나를 통해 우리의 심식을 중심으로 일 어나는 모든 사실 그대로를 알아차림하는 지혜가 깊어지면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밝아져 마음이 만든허망한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 고 조화로운 자비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대념처경》에 의하면 위빠사나 수행의 이익 을 다음의 일곱 가지로 들고 있다. (1)번뇌가 제거 되어 마음의 청정하게 된다. (2)슬픔과근심을 극 복할 수 있다. (3)비탄을 극복할 수 있다 (4)육체 적인 고통을 극복할수 있다. (5)정신적인 고뇌를 극복할 수 있다. (6)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 한의 네 가지의 도(道)와 과(果)를 성취하게 된다. (7)궁극적으로 열반을 성취한다.

위빠싸나 수행에는 이러한 공덕이 있으므로 일 상의 생활이 그대로 수행의 장이 되어야 하며 일 상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을 하나도 놓 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사마타이든 위빠싸나이든 호흡관 찰, 즉 아나빠나사띠가 수행의 중심이 된다는 것 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마타에만 집중할 경우에 는 마음이 가라앉아 활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의식의 집중게서 오는 망념의 상태를 즐기면서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 께서도 공무변처정, 식무변처정, 무소유처정, 비

상비비상처정 등을 거쳐 멸진정에까지 이르셨지 만 선정의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는 엄연한 현실 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셨다. 그래서 이 것만으로는 열반을 증득할 참다운 지혜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하시고 당신만의 수행법으로 정 진하신 바 마침내 대각을 이루신 것이었다. 그것 이 바로 이 위빠싸나 수행법이기 때문에 불자라 면 반드시 여기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 다. 대승불교와 밀교의 출현에 의하여 여러 가지

수행법 이 개발되 었지만 그 근본원리는 모두 사마 타와 위빠싸나를 기본으로 하여 변형되었거나 발 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 나빠나사띠라는 호흡관찰법 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께서 사마타를 통하여 번뇌를 제거 할 수 있오며 위빠싸나를 통하여 열반에 이르는 지혜를 증득할 수 있다는 말씀을 새겨들을 필요 가 있다

사마타에서 계속하여 더 깊은선정에 들것인가 위빠싸나로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인가는 수행자 자신이 택할 문제이다. 사마타를 통하여 위빠싸 나로 발전될 수도 있을 것이고 위빠싸나의 과정 을 통하여 사마타에서 거둘 수 있는 마음의 안정 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타가 먼 저인가 위빠싸나가 먼저인가에 대해서는 그야말 로 지관균등, 지관쌍수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 을 것이다. 번뇌의 제거와 열반을 증득할 수 있는 지혜는 이 둘을 함께 닦으며 균형을 이루었을 때 에 증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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