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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역사는 장구(長久)하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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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3-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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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6 17:30 조회 4,1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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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역사는 장구(長久)하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은 상당하다
돈황막고굴 초기밀교 미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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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는 역사적으로 초기와 중기, 그리 고 후기로 구분하고 있다. 초기밀교는 아 직 밀교로써 조직체계가 완성되지 않아 종 교적인 이념이나 成佛思想이 없거나 빈약 한 상태의 밀교로, 현세적 願望 즉 治病, 祈福, 鎭護國家 등을 해결해주는 呪法이 나 呪文이 중심이 되는 밀교다. 인도와 중 국의 초기밀교는 모두 대승불교에 속하였 으나 중국은 불교의 동전에 따라 인도와는 다른 경로를 통하여 전개되 었다.

그리고 중기밀교는 인도가 중국보다 1 세기 정도 빠른 시점에 나란타사원을 중심 으로 태동하였고, 인도의 개원3대사에 의 하여 전해진 중국의 중기밀교1)는 唐 현종 이후 상당기간 성행하였으나 安史나 黃巢 의 亂 이후 밀교가 쇠퇴하면서 사천과 같은 특정 지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명맥이 이어졌고 이후 곧 후기밀교의 시대를 맞게 된다

불교미술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때 현 교와 밀교미술로 구분할 수 있으나 실제적 으로 대부분의 불교미술에서 두 미술이 혼 재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미술의 역사에서 밀교미술은 분명히 하나의 軸을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중기밀교 이후의 불교미술이 밀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불교가 시 작된 인도에서 초기밀교 미술의 흔적이 드 물며 9세기 이후의 탄트리즘을 제외하고는 2) 인도 불교미술의 역사에서 밀교의 영 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위진 남 북조시기에 대승불교에 밀교적인 요소가 태동하며 관련된 미술이 불교사원지나 석 굴을 중심으로 시도되었고 초당시기가 되 면 돈황 등 불교석굴에 밀교미술이 본격적 으로 조성되었다. 3)특히 성당시기 이후부 터 중기밀교가 종단을 형성하며 중국대륙 에 밀교미술이 만개하게 된다.

밀교미술의 특징은 佛, 菩薩이나 天과 같은 諸 尊의 數가 현교에 비하여 대폭 증 가된 점이다. 재래의 불보살에 『베다』 나 힌두교의 신, 그리고 토속의 신까지 수 용하여 밀교계통의 본존이나 대일여래를 정점으로 변상이나 만다라를•구성하고 있 다. 특히 힌두교신의 권능과 다양성을 불 교에서 수용하여 각종 인도전통의 신이밀 교 신의 판테온에 합류하였다. 두 번째는 밀교계통의 불보살이나 신중은 대부분 다 면다비가 강조되었고, 얼굴의 표현이나 체 구, 채색에 있어 강렬한 공포와 분노의 형 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징 은 본존의 밀교적 인 성격과 호법과 수호의 기능을 갖춘 신중의 역량이 제고되었으며, 힌두교 원래의 성격과 도상도 참고가 되었 다고 본다. 그리고 도상에서 이란이나 서 역미술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어 밀교계통 각종 신중도상의 기원문제에도 참고가 된 다. 세 번째는 힌두교계통의 신이 실크로 드를 중심으로 불교뿐만이 아니라 소그드 인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와 같 은 타종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이 다.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의 유적을 중심 으로 출토되고 있는 힌두교신의 도상과 명 호는 초기불교에서 힌두교계 신중의 전입 과 유통경로에 상당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 다. 마지막으로 지역에 따라서 土俗의 神 이나 탄트리즘이 반영된 된 점과 만다라의 적용 등도 밀교미술의 특징으로 거론될 수 있다.

초기밀교 미술의 단계에서는 대체적으 로 타종교나 토속의 신을 수용하여 호법신 중의 개체가 증가하였고, 도상에서 다면다 비나 분노존의 적용과 같은 변모를 보이고 있다. 밀교가 체계적으로 성숙한 중기밀교 와 달리 특정 밀교화된 대승경전에 소의한 신중이 중심이 되며, 神衆은 직접적인 신 앙의 대상이 아니라 불보살이나 신앙인 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신중의 구성은 대부분 힌두교의 주요3대신과 변화신이 중심이되며 『金光明經』 「鬼神品」 과「齋天儀亂」 등에 규정된 호법20天衆에 속하였고, 唐代에는 밀교계통 본존 의 28부중 등으로 재분류되었다. 중기밀 교시기에 초기밀교 신중들은 대일여래 를 중심으로 각종 만다라를 구성하거나 명왕 등으로 계승되었으며, 후대의 신중 도 등에도 지속적으로 주요 구성원이 되고 있다.

초기밀교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적으 로 호탄과 돈황, 운강석굴 등이 있으며, 키질이나 투르판 지역에서도 초기밀교 의 흔적이 발굴되고 있다. 실크로드 유 적 중에서 돈황석굴이 대표적이며 내용도 가장 풍부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돈황에서 약 5백 개소에 달하는 석굴조영 이 이루어졌는데, 불교미술의 역사에서 규 모가 최대며, 남북조가 시작되는 북량에서 淸初까지 약 1500년의 불교미술의 역사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현교는 물론이고 밀 교계통에서도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유적 으로 돈황의 막고굴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초기밀교라고 부르는 당 현종 이전 의 밀교도상은 막고굴에 보존된 것이 가장 풍부하고 완벽하다. 제285굴의 서벽이 대 표적이며, 장경동에서 발굴된 각종 문서와 경전을 비롯하여 티베트 문헌과 소그드 문 헌, 그리고 각종자물과 견본도상에 이르 기까지 초기밀교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본격적인 중기밀교석굴은 대체적으로 盛唐 이후부터 조성되었는데, 초기석굴 과 달리 거의 모든 석굴이 밀교와 관련 있 다.

돈황 제285굴 4)서벽에 도해된 각종 신 중의 도상과 배치구도는 초기밀교 미술과 관련된 연구에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제285굴의〈북벽8불설법도〉의 동측 두 폭의 설법도 발원문에 墨書로 된 조상제 기가 남아있다. 5)발원문에 따르면 285굴 은 서위대통 4년(538년)에서 5년(539년)에 조성되었고 봉헌되었다. 현존하는 서위 석굴 가운데 제285굴은 규모가 가장 크며 석굴의 구조도 복두형식으로 당시 유행했 던 중심주석굴을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이 시도되었다. 본존이 안치된 서벽에는 각종 『베다』와 힌두교계통의 신과 천왕, 파 수선 등이 나열하고, 천정에는 불교적 우 주관이 도해되 었다. 신중들은 불법을 수호 하는 호법신이나 방위적 성격의 신장으로 『베다』나 힌두교에서의 위계와 권능에 따라 배치되었는데, 신중의 배치구도와 다 면다비의 형식, 그리고 분노존과 같은 특 징은 후대의 밀교계통 변상이나 만다라와 같은 밀교미술에서 계승하고 있다.

본고는 본격적인 초기밀교 미술로 평가 를 받는 제285굴의 서벽을 중심으로 도해 된 각종 신중들의 기원 및 성격을 분석하 여 초기밀교 미술의 흔적을 규명하고 타 종교와의 교류문제를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개별신중의 성격과 기원문제는 서벽 의 도상해석은 물론 나아가 초기 밀교 미술 의 근본요체를 파악하는데 중요하다고 본 다. 특히 월지계통과 소그드인 등이 번역 한 초기 대승경전에 반영된 각종 밀교적 인 요소를 분석하여 초기밀교계통 신중의 경전적인 배경도 규명하도록 하겠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믹고굴 제285굴 서벽 의 도상해석은 물론 고대 서 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소그드 미술과 같은 각종 종교미 술과의 교류관계도 규명할 수 있다고 본 다. 현재 불모지나 다름없는 초기밀교 미술의 기원과 전입경로, 그리고 전개과정을 의 도상해석에도 새로운 기여가 있기를 기 밝힘으로 밀교미술은 물론 각종 종교미술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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