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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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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3-3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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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 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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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16:26 조회 4,8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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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밀교문화와 생활 (27회)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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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 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60가지의 선심(善心)과 악심(惡心)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은 지 (智)이고, 중생이 아는 것은 그저 식 (識)일 뿐이 다. 그래서 중생의 식 (識)을 망식 (妄 識)이라 부른다. 망령되고 그릇된 생 각, 마음이다. 중생의 생각과 마음을 망념 (妄念), 망심 (妄心) 이라고 말한다.

불교는 이러한 망식을 여의어 부처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지혜의 증득을 가리킨다. 그래서 불교의 유식학에서는 중생이 부처 되 는 과정을 전식득지 (轉識得智)라고 표 현한다. 중생의식 (識)을 굴려세轉] 부처님의 지(智)를 얻게 한다[得]는 뜻 이다.

이를 밀교의 대표적인 경전인『대일 경』에서는 160가지의 마음으로 설하고 있다. 중생의 마음[妄心]을 설하면서 동시에 지심(智心)을 함께 설하고 있 다. 그 마음을 경전에서는 60가지로 설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경전에서는 59 가지를 설하고 있다. 1가지는 번역과정 의 오류로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대일경 / 입진언문주심품」에서 중생의 60가 지 마음을살펴보고자 한다.

금강수보살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세존이시여, 마음에 대하 여 설해주시기를 원하옵니다.”

금강수의 간청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 이 마음을 60가지로 말씀하셨다.



탐심과 무탐심


그 첫번째 마음이 탐심(貪心)이다. 탐심은 어떤 대상에 물들어 집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집착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며, 집착에 끄달리는 것 이 곧 탐심이다. 이것이 치성하면 악업 을 짓게 된다. 선무외 삼장은 중생의 탐심을 잡초에 비유하였다. ‘만약 수행 자가 마치 농부가 일하면서 잡초를 뽑 아내고 좋은 모를 돌보는 것과 같이 한 다면, 곧 깨끗한 마음의 세력은 점점 자라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탐심을 없애는 것은 수행이나 생활 가운데 중 요한 덕목이다. 그러므로 불공하고 기 도하는 진언행자는 더더욱 탐하는 마 음을 버려야 한다. 탐심이 진심과 원망심(怨望心)을 일으키고 대립과 갈등을 야기한다.

두 번째가 이와 반대되는 마음으로서 무탐심(無貪心)이다. 탐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즉 탐냄이 없는 마음이 다. 선무외는 이 마음을 일러서 선(善) 이나 공덕 (功德)마저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무탐심은 공심(空 心)이자 참다운 마음[眞心]으로 비유 된다. 집착과 애착의 걸림이 없는 마음 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선법(善 法)에 물들지 않고 더불어 선(善)의 싹 을 장애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어 느 것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금 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을 말한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 곧 무탐심이다. 무릇 무탐심이 수행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탐내는 마음의 실상 을 잘 관찰하여 집착에 물들지 않는 마 음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심과 자심


세 번째는 성내는 마음, 진심 (W心) 이 다. 무엇을 성내는 마음인가 하면, 분 노가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선무외 삼 장은 분노란 성내는 마음이 발동하여 현상이 바깥에 드러난 것이라고 하였 다. 마음의 실상을 알기 어려우므로 분 노의 법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성냄 이라 해석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생활 가운데 고요하지 않은 마음이 일어나 면 이것이 성내는 마음의 실상임을 알 라고 하였다. 온갖 인연 가운데 오직 성내는 마음을 제대로 관찰하여 스스 로 머무는 바 없이 머무르면 곧 성냄의 장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탐 하고 성내는 마음은 머무는 바 없는 가 운데서 사라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

네 번째가 자심 (慈心) 이다. 자심은 자 애로운 마음이다. 성냄과 반대되는 마 음이다. 성내지 않는 마음이 곧 자심이 며 이는 자비 (慈悲)와 같은 말이다. 자 애, 자비 속에서 분노는 일어날 수 없 다. 성내거나 분노하는 마음에서 무자 비가 증폭되는 법이다. 애착과 집착으 로 인한 성냄과 탐심은 자애가 아니며 선한 종자가 아니다. 부처님께서 자애 는 자무량심 (慈無量心)을 닦는 데서 길러진다고 하셨다. 스스로 즐거운 마 음을 내어서 남까지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이다. 성내지 않고 즐거운 마음을 내는 것이 자무량심이다.



치심과 지심


다섯 번째는 치심 (凝心)이다. 어리석 은 마음이다. 법을 관찰하지 않고, 닦 지 않는 마음이다. 제법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연기의 진리를 알 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지혜가 없음 을 의미한다. 무명(無明)을 말하는 것 이다. 선무외 삼장은 ‘선과 악, 옳고 그 름을 보지 않고 지혜로써 판단하지 않 으니, 이로 말미암아 온갖 잘못을 저지 른다’고 하였다. 모두가 어리석은 탓이 다. 이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위의 탐/진/치는 삼독심 (三毒心)으로서 십악 업 (十惡業) 가운데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악업이다. 삼업 가운데 의업(意 業)에 해당한다. 이 치심은 수행과 공 덕에 장애를 일으키는 번뇌 덩어리이 다.

여섯 번째는 지심 (智心)이다. 앞의 치 심과 반대되는 마음이다. 지심은 지혜 의 마음이다. 지혜는 제법실상을 깨닫 는 것이다. 일체 존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깨닫는 것이다. 즉 일체를 분 별지(分別智)로써 간택(簡擇)하여 수 승한 법을 취하고 법대로 행하는 것이 다. 바로 이것이 어리석지 않은 마음의 참 모습이다. 우리 총지종의 십선회향 (十善回向)에 ‘치심중죄 지심참회(凝 心重罪 至心觸»)지혜공덕 금일성취 (智詩功德 今日成就)’라는 게송이 있 다.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을 지혜의 마 음으로 바꾸어 그 공덕을 성취해야 할 것이다. 오직 부처님 법을 믿고 행하여 실천하는 가운데 지혜가 증장된다. 부 지런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흔들림 없는 금강심(金圓心)


일곱 번째는 결정심 (決定心)이다. 굳 게 안주하여 흔들림이 없는 마음이다. 밀교에서는 이를 금강심 (金剛心)이라 고도 한다. 어디에 안주하고 무엇이 흔 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안주한다는 것이며, 그 믿는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 야 하고, 수행에 퇴전함이 없어야 한다 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결정심과 금강 심은 바로 밀교의 삼밀수행을 말한다. 이를 삼금강(三金剛)이라 한다. 신구 의(身□意)의 삼밀이 금강같이 굳세어 서 부서지지 않고 깨트려짐이 없는 것 이다. 신심과 수행이 퇴전하지 않는 것 이다. 결정심을 버리지 않아야 용맹정 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마음은 부처이면서 동시에 중 생이다. 마음은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 와 같다. 잘 쓰고 잘 그리면 부처가 되 는 것이요 못 쓰고 잘못 그리면 중생이 되는 것이다. 하루 가운데 입과 몸과 마음에 부처도 있고 중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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