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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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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5-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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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철핵착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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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17:45 조회 3,9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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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밀교문화와 생활』 (28회)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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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철핵착사) 


의심 (疑心)


지난 호에서는 중생의 60가지 마음 가 운데 제1심에서 제7심까지 살펴보았다. 중생의 몸과 입과 뜻은 그 씀씀이에 따 라 중생이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 었다.

이번호는 제8심부터 살펴보고자 한 다. [대일경]과 [소]에서는 제8심을 의심 (疑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들으면 대개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경 향이 있다. 즉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 특히 불법 (佛法)을 의심하고 스승을 믿 지 않고 계마저 의심하는 것은 의심하 는 마음 중에 가장 큰 의심이라고 말한 다. 그런데 불자가 되려면 반드시 계를 받아야 하는데, 계를 의심한다는 것은 불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법을 의심하고 스승을 의심한 다는 것은 삼보(三寶)에 귀의하지 않고 삼보를 공경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계를 받을 때는 삼귀의계 (三歸依戒)를 제일 먼저 받는다. 그 이유는 바로 불법승(佛法僧)의 삼보를 믿고 의지해 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삼 귀의가 기본이며 근본인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삼보를 의심한다는 것 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불교에 귀 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대일경소』에 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계를 받을 때 문득 의심을 낸다. 내가 지금 계를 제대로 받고 있는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이와 같이 계 받 는 것을 의심하고 있다면 차라리 계를 받지 않는 것이 낫다.



수순(隨順)은의심을 다스리는 길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혹 은 스승을 의심하고 법을 의심하는 등 여러 가지 사례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도를 행하는 데에 의심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물론 학 문(學問)이나 간화선(看話禪)을 행할 때는 ‘의심을 하라’ ‘의심을 버리지 마라’고 말하여 수행이나 학문의 경책으 로 삼고 있지만 삼보를 의심한다는 것 은 기본적으로 불자다운 자세가 아니 다. 믿음의 종자를 싹틔울 수 없고 믿음 의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심을 다스리는 길은 수순(隨順)이 다. 불법 (佛法)을 믿고 스승을 따르는 길은 수순 밖에 없다.『대지도론』이나 『대일경소』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갈 림길을 보고서 좋은 방향으로 따라가 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이것이 바로 의심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즉 불법승의 선지식을 따르는 것이 수 순이며 수순이 곧 의심을 다스리는 길 이라는 것이다.

또한 의심을 버리는 길은 선지식으로 부터 여법한 가르침을 들음에 있어서 지심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라고 하 였다. 즉 실천을 하는 데서 의심이 다스 려진다는 것이다. 실천이 없기 때문에 의심만 일어나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 는 자일수록 의심이 많은 법이다. 불법(佛法)과 스승을 의심하지 말자. 수순 하자. 실천하자. 이것이 의심 많은 중생 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러한 마음을 또한 암심 (暗心)이라 한다.




암심 (暗心)


암심 (暗心)은 어두운 마음을 말한다. 치암(凝暗)고 같은 말이다. 즉 어리석 은 마음이다. 치심 (凝心)이라고도 한 다. 무엇이 어리석은 마음인가. 그것은 진리에 어두운 마음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 (無知)를 말함이오, 지혜가 없는 무명 (無明)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암심은 지혜가 없는 무명과 진리를 알 지 못하는 무지 (無知)를 말한다. 지혜 가 없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이다. 앞의 의심과 유사한 것으로서, 특히 의심할 바가 없는 것에 대해 새로이 의심을 일 으키는것이 암심(暗心)이다.

[대일경소]에서 말하기를, “무엇을 어두운 마음[暗心]이라 하는가? 의심할 바가 없는 법에 대해 다시 의심하는 생 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 은 이른바 사성제(四聖語)와 부정 (不 淨)과 무상(無常) 등과 같은 것을 의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듣고서 마 음에 주저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마치 밤에 나무의 밑둥을 보고 갖가지로 억 측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다. 만약 이와 같은 모습을 스스로 본다면 어두 운 마음이 시켜서 그런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하였다.



암심은 곧 무지鄭知)의 극치


어리석은 마음은 단지 진리를 모르 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 치지 않고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무엇이 잘못인지 조차 도 모르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 오, 무지 (無知)의 극치다. 자신을 스스 로 살필 줄 안다면 부끄러운 마음은 절 로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겸손과 하심 은 자연스레 따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지혜 없음 이오, 어두운 마음이며, 어리석은 사람 이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고집이 세 지고 그로인하여 오만과 편견으로 가 득 찬다.

또 우리 주변에 다른 사람의 말을 믿 지 않고 남은 그르다고 비난하며, 오로 지 자신의 말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사 람들이 많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안하무 인격으로 남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것도 지혜가 없는 사람이며, 진 리에 어두운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 이다. 이 또한 암심 (暗心)이다. 그러나 자신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 보리심이다. 이를 [대일경]에서는 여실지 자심 (如實知自心)이라고 한다. 여실히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또한 여실 하게 자신을 아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것이 명심이며 보리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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