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부터 하라. 해야 될 일인지 아닌지는 부처님 법문으로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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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9-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종조멸도절 특별기획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천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인터뷰=김천 작가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2:30 조회 4,905회본문
지성정사, 김동운 각자 인터뷰, 종조 원정대성사를 기억함
‘사람이 사람을 칭찬하면 반드시 유한, 법계가 사람을 칭찬하면 무한’
명문가 선비다운 기품, 종단 대소사도 불공 후에 결과를 보고서 판단
종조 원정대성사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의 존재는 사 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덕행을 기억 함은 뒤따르는 이들의 거울이 되고, 가 르침을 잊지 않을 때 고해를 건너는 나 침반이 될 것이다. 총지종을 세워 일으 켜 ‘생활의 불교화, 불교의 생활화’를 몸소 보이신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과 지극한 덕행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마음속엔 생시의 모습 그대로 살아계시다.
대성사로부터 생명의 은혜를 입었다 고 강조하는 김동운 각자님은 대성사 님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간직하고 있 다. “참 근엄하신 분입니다. 허투루 웃 거나 농담을 입에 담는 일은 한 번도 없 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그 분 앞에 서 면 자연히 몸가짐을 바로 할 수 밖에 없 었습니다. 평소에는 감정표현이 없어 서 말 한마디를 가벼이 하지 않았고 궁 금한 일이 있어 질문을 할 때만 입을 열 어 말씀하셨습니다.”라고 기억한다.
그런 성품에 대해 대성사님을 따르 고 직접 가르침을 들었던 지성 정사님 은 아마도 태생부터 선비와 같은 기질 이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주변으 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집안 대 대로 유복했고 명문가 선비다운 기품 이 있었습니다. 종암동 실지사에 계실 때를 돌아보면 늘 한복을 정갈하게 갖 춰 입으셨습니다. 혼자 계실 때도 의복 을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바깥바람을 싫어하셔서 일 없이 문을 열고 드 나드는 일을 삼가셨는데, 어쩌다 찾아 뵙고 멀찍이 앉아있으면 ‘그리 있으면 불편하니 나가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몸에 밴 성품이 상대의 입장을 살피 고 배려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 성사께서 총지종 스승이 되기 위해 갖 춰야할 인법을 정한 내용도 살펴보면 옛 선비의 덕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 합니다. 밀교수행을 하는 이들은 반드 시 언행이 일치되기를 바라는 뜻을 그 대로 담았을 것입니다.”고 돌아보았다. 자신 뿐 아니라 곁에 두는 이들도 그 행 실을 살펴보고 말과 뜻과 행동에 어긋 남이 없도록 강조하셨다는 것이다.
김동운 각자님은 대성사님께서 늘 불 공을 강조하셨다는 이야기를 회고했 다. “어떤 일을 물어 질문 드리면 곧바 로 말씀하시는 법이 없으셨고 한참 생 각하신 후에야 답하셨습니다. 큰일을 결정해야할 때 늘 한결같이 ‘불공부터 하라. 해야 될 일인지 아닌지는 부처님 법문으로 보이니까’ 반드시 그리하라 고 당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병 또한 불공으로 견디고 이길 수 있 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 신께서도 종단 대소사를 결정해 야할 때 불공 후에 결과를 보고서 판단하셨습니다.”고 전한다. 그 때문에 어떤 일을 해도 “추호도 그릇되게 말하거나 행하시는 바 가 없다”는 것이 각자님의 기억이 다. 지성 정사님 또한 “부처님 대 답만이 원만한 것이니, 매사에 불 공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라고 기억한다.
지성 정사님은 대성사께서 창종 을 선포하시고 실지사에서 경전 을 번역하시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실지사는 24평짜리 3층 건물 이었는데 방 하나가 한두 평 남짓할 정 도로 좁았습니다. 경전을 번역할 때면 작은 책상을 놓고 꼿꼿이 앉아 경을 보 고 글을 옮겼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 면 한 줄이 남았더라도 바로 그치고 책 을 덮어 다음에 정해진 일을 하셨습니 다. 그야말로 치밀하고 철저하게 행동 하셨습니다.” 치밀함이 몸에 배어 매사 가 시계바늘 같았다고 기억한다.
‘요즘 하는 일이 어떠냐?’고 물을 때 ‘힘들다’고 답하면 혼이 났습니다. “말이 행동을 따르는 법이니 힘들어 도 잘되리라 믿고 그렇게 마음먹어 감사할 줄 알고 매사 지극하게
정성껏 행하는 것이 법계가 사람을 돕는 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 지성 정사님은 기억한다.
스스로에게 엄밀했던 자세는 대성사 님의 법문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 동운 각자님은 “제가 가장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가르침은 ‘계행을 지켜라’ 는 것입니다. 또 불공을 정할 때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정하고 어떤 경우에도 반 드시 실행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불 공하다보면 반드시 고개가 닥쳐오는데 그 고비를 잘 넘겨야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불공이든 4분의 3쯤 지나가면 고 비가 있고 그걸 이겨내야만 원하는 바 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말씀하셨습니 다.”라고 회상했다.
대성사님은 성품상 남을 칭찬하는 일 이 없었다고 한다. 이 또한 이유가 있 었는데 “사람이 사람을 칭찬하면 반드 시 유한하지만, 법계가 사람을 칭찬하 면 무한하다는 것이 대성사님의 가르 침입니다. 그러니 남을 칭찬하면 그 공덕을 쉽게 깎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하는 일이 어떠냐?’고 물을 때 ‘힘 들다’고 답하면 혼이 났습니다. 말이 행 동을 따르는 법이니 힘들어도 잘되리 라 믿고 그렇게 마음먹어 감사할 줄 알 고 매사 지극하게 정성껏 행하는 것이 법계가 사람을 돕는 이치라고 말씀하 셨습니다.”고 지성 정사님은 기억한다. 결국 생활의 불교화와 불교의 생활화 는 평소 마음씀과 말과 행동에서 고스 란히 드러나는 법이니, 불공 따로 언행 따로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이 대성사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김동운 각자님이나 지성 정사님 모두 “불공을 가르쳐주시면 어김없이 점검 하셨습니다. 시킨 대로 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매사에 점검하지 않고 넘기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도 한 번 들으 시면 잊지 않고 꼭 그 결과를 물으셨습 니다.”라고 공통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각자님은 “대성사님은 어떤 일도 우연 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이 인연 따라 나타나는 법이니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이런 인을 지었다고 마음에 새겨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세월 이 지났지만 그 절절한 가르침은 아직 도 자신의 삶을 버티는 기둥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 덕에 세상의 희로애락 과 풍파를 견뎌 지나칠 수 있었다는 것 이다.
용기를 내어 불모지에 첫발을 내딛은 이가 있었기에 그 걸음을 따라 길이 생 긴다. 대성사님이 문을 열어 만든 길을 따라 불법이 생활 속에 담기고 생활이 불법과 다르지 않는 수행의 길이 세상 으로 통하게 되었다. 육신의 무상함을 멸도로서 보여주셨지만, 기억하는 이들 은 아쉬움 속에서 그 가르침을 지켜갈 것이다. 사바의 풍파가 마음을 흔들 때 그 기억의 한 조각은 길을 밝히고 수행 을 이끄는 별빛이 될 수도 있으리라. <인터뷰=김천 작가>
지성 정사
김동운 각자 (관성사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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