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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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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9-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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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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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2:38 조회 5,0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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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밀교문화와 생활 (31회)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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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중생이 지니고 있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대일경]에서는 이를 60가지 로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여심 (女心), 자재심(自在心), 상인심(商人心)이 있다.

여심 (女心)은 여인의 마음으로서 애욕 에 빠진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부정적 의 미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자재심 (自在 心)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이 또한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상 인심 (商사:')은 재산을 열심히 모은 뒤에 쓰임새를 생각하는 것처럼 실천은 없고 계산만 하고 있는 마음을 가리킨다.



여심 (女心)


여심을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여심이라고 하는가? 애욕 의 법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애욕은 이 성에 대한 탐착이다. 애욕(愛慾)과 성욕 (性慾)에 집착하는 것을 여자의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여자를 애욕의 대상이자 주범으로 여긴 탓으로 보인다. 애욕을 일 으키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은 백번 이해 한다고 손치더라도 그 비유는 잘못되었 다. 어찌 애욕과 성욕을 여자의 마음에 비유한다는말인가. 여자를부정(不貞)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잘못된 사고방 식이다.

계속하여 여심에 대해 [대일경소]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여인은 욕심이 많은 것이 남자의 백배 다. 언제나 좋아하는 것만 변함없이 생각 하고, 혹은 다른 사람의 용모나 자태 등 만 생각하며, 수행자로 하여금 청정한 마 음을 장애하며 가리게 한다. 역시 오랜 생애 동안 일찍이 여인이 되었기에 아직 본래의 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여인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비유하고 있 는데, 본질은 애욕과 성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마음 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시비로 삼는 것 과 같다. 그런데 여심을 없애는 길은 바 로 부정관(不淨觀)과 사념처 (四念處)라 고한다.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부정관(不淨觀)과 사념처(四念處) 등으 로 실상을 관하면 이것이 그 마음을 다스 리는 방법이다.’ 성욕과 애욕을 소멸시키 는 방법은 초기불교에서 설해진 오정심 관(五停心觀) 가운데 하나인 부정관(不淨觀)을 행하는 것이다. 오정심관은 불 선(不善)하고 불건강(不健康)한 마음상 태를 제거하는 다섯 가지 수행법인데, 그 가운데 부정관(不淨觀)은 시체가 부패하 는 과정이나 신체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감각적 욕망 등을 끊는 수행법 을 말한다.



자재심 (自在心)


자재심은 자기 멋대로 하는 마음이 다/대일경소에서 자재심을 이렇게 설하 고 있다. ‘무엇을 자재심이라 하는가? 모 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생각하는 것이 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러므로 자재심 (自在心)은 진심 (1心)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자재 (自在)란 인도 브라만교의 천신(天神)을 말하는데 불교에 수용되면서 대천세계(大千世界) 가운데 하나로서 자 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경지를 나타내 며 만물 창조의 신으로 변용되었다. 그 모습은 눈이 셋, 팔이 여덟 개로, 흰 소를 타고 흰 지팡이를 들고 있다. 삼계 (三界) 가운데 물질세계인 색계 (色界)의 제일 꼭 대기에 있는 천신으로서 자기 뜻대로 이 루어지게 하는 신이다. 그러나 이 자재심 은 중생의 마음으로서 부정적 의미로 쓰 여 자기 고집을 부리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r대일경소J의 내용을 살펴보자.

자재란 외도(外道)들이 섬기는 천신이 다. 그 종(宗)에서 자재천은 생각하는 대 로 모든 중생과 괴롭거나 즐거운 일을 만 든다고 한다. 이 법을 구하는 자도 언제 나 생각을 이어서 그 본존과 같게 되기를 원한다. 만약 진언을 행하는 사람이 자주 이와 같은 실지 (恐地)를 염하고 자기가 바라는 대로 성취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지재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또 한선세(先世)의 습(習)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마음에서 괴롭고 즐거운 일을 만 든다. 자기 생각에 갇혀 자기 고집을 부 려서 자기 마음에 집착한다면, 그것이 곧 고(苦)이다. 그래서 고(苦)를 벗어나는 길은 연기의 이치를 깨닫는 데 있는 것이 다. 이를 r대일경소」에서는 이렇게 설하 고 있다. ‘모든 법은 모두 다 인연에 속하 며 자재는 없다고 관하면, 이것이 그 마 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고 감이나 이 루거나 못 이루는 것도 모두 인연에 의 한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無常)이오 무 자성 (無自性) 이며, 일체가 공(空)한 것이 다. 그러므로 인연법을 깨달으면 자재가 일시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자재심을 다 스리는 길은 부처님의 진리를 자각하는 데 있다.



상인심 (商人心)


상인심은 장사하는 상인(商人)의 마음 이다. 그것은 어떤 마음인가. 장사하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이해타산으로 대하 는 것이다. 부정적 의미의 마음이다. 상 인심을대일경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 하고 있다. ‘무엇을 상인심이라 하는가? 처음에는 거두어 모으고, 뒤에 계산하고 나누는 법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재화(財貨)를 일단 끌어 모아놓고 그 다 음에 쓰일 곳을 생각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대하는 마음이다. 계속 해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세상의 상인은 먼저 힘써서 화물(貨物) 을 쌓아 모은다. 그런 다음에 사유하여 이를 분석하고, 이 물건이라면 이곳에 사 용하기 적당하며, 저 물건이라면 저곳에 사용하기 적당하여 큰 이익을 얻을 것이 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상 인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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