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해금, 중도를 말하다

페이지 정보

호수 293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4-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남혜 정사의 위드다르마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남혜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4-12 15:11 조회 931회

본문

해금, 중도를 말하다

불교에서 중도를 설명할 때 소나 비구의 이야기를 많이 인용한다. 소나 비구는 라자가하에서 부처님의 게송을 듣고 출가한 부유한 장자의 아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했지만 수행의 결과가 좀처럼 체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속세의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자질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한 소나 비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보시로 공덕을 쌓는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때 소나 비구의 그 마음을 아신 부처님께서 직접 그를 찾아오셨다.


 “소나꼴리위사,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집에서 지낼 때 악기를 잘 연주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예, 부처님.”

 “그대가 악기를 연주할 때 현을 너무 팽팽히 조이면 소리가 듣기 좋던가?”

 “좋지 않습니다.”

 “그럼, 지나치게 느슨하면 듣기 좋던가?”

 “좋지 않습니다. 부처님, 악기를 연주할 때 현의 완급을 적당히 조율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욕이 지나쳐 너무 급하면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열심히 하려는 뜻이 없으면 태만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생각지 말고 항상 가운데 길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 속세의 미혹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하지만 예전부터 꼭 배워보고 싶은 악기가 있었다. 바로 해금이다. 어릴 때 고전 사극에서 들려오던 해금 소리가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해금을 배울 기회가 있으면 꼭 배워보고 싶었다. 때마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해금 강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3개월간 해금을 배운적이 있었다.


 해금은 작은 울림통에 세로로 대를 세우고 울림통과 대 사이에 두 개의 줄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 말총으로 만든 활대를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오른손은 활대로 줄을 마찰시키고, 왼손은 두 줄을 한꺼번에 감아 잡고 손가락을 쥐거나 떼면서 소리를 조절한다.


 해금은 다른 악기들처럼 음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제대로 소리를 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해금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뛰어난 음감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현과 활의 마찰에서 얻어지는 음들을 정교하고 조화롭게 다룰 수가 있다. 그래서 연주자의 손에 맡겨진 해금에서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깃든 소리가 발하려면 각고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데 이것은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의 노력의 몫이다. 영혼을 울리는 해금소리는 연주자의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중도의 이치 또한 적당한 줄의 조절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악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와 흥미가 있어야 하며 그 악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짧고 간단한 연습곡과 배우기 쉬운 동요로부터 시작해서 해금의 기초를 세울 수 있게 설정한 여러 다양한 곡을 난이도에 따라 배열하여 고급단계까지 나아가는 연주자의 절차탁마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