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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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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8-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불교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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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1:43 조회 4,9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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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별거 없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 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 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 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 는달큼한 바람, 해질 무렴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 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 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 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 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 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지난 2019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혜자 씨의 수상소감 입니다. JTBC 드라마〈눈이 부시게〉 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김혜자 씨는 이 드라마에서 갑자기 늙어버린 김혜자 역을 맡아 몸은 노인이지만 마 음은 25살 청춘을 연기했습니다. 김혜 자 씨는 우리나라 대표 배우답게 그 역 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대상을 수 상하게 된 것입니다.

〈눈이 부시게〉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 로가 된 드라마였습니다. 잠시나마 인 생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었습니다. 일 상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시 간을 과거로 돌리는 마법의 시계를 중 심으로 한 시간여행이나 치매 노인의 생각이나 상상이 드라마의 주요 얼개 지만, 드라마가 줄기차게 말하고자 하 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별거 없는 하찮은 인생이지 만 그래도 지금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순간이라고 말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 여금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하는 드라 마였습니다.

혜자(김혜자.한지민) 오빠 영수(손호 준)는 거창하게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서 허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백수입니 다. 영수가 하는 1인방송이라는 것도, “저거 왜 하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드 는 콘텐츠뿐입니다. ‘자고 있는 할머니 안 깨우고 청양고추 먹기’, ‘48시간 잠 자기’ 등 이런 거 하면서 소중한 젊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짜장면 10그릇 먹 기’ 먹방을 위해서는 돈도 없으면서 무 턱대고 전 여자친구네 가게서 짜장면 을 열 그릇이나 시켰는데 한 그릇 밖에 먹을 수 없어 나머지 아홉 그릇은 반품 하려고 합니다. 불어터진 짜장면이 반 품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과거에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 친구의 오래된 감정을 소환해 거기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온갖 멋있는 표 정은 다 지어보았지만 돌아오 는 건 여자 친구의 주먹뿐입니 다. 이어 여자 친구와 찍은 학 생 때의 사진이 화면을 채우면 서 과거의 멋있었던 시간과 지 금의 찌질한 일상이 대비되면 서 서글픔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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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 또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하는 일이 라곤 미용실 하는 엄마를 도와 손님들 머리를 감기거나 빈둥 거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선배 소개로 성인영화 더빙 알바를 마치고 와서는 심란해서 잠을 못 이루다가 술집 가서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나 운서 꿈꾼 걸 후회한다, 그 꿈이 아니 었다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이런 말 들을 늘어놓으면 술주정을 합니다. 꿈 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자신에게 많 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부모님을 실망 시킬 수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백 수 동지인 오빠와 하루 종일 시시한 말 싸움을 하고, 엄마 눈치 봐가며 밥 비 벼 먹는 것이 그녀의 한심하기만 한 일 상입니다.

친구들 또한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 다. 한 친구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 국집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고, 다른 친 구는 편의점에서 알바 하면서 결코 이 룰 수 없을 것 같은 가수 꿈을 부여잡 고 있으며, 혜자의 로맨스 상대인 준하 는 혜자나 영수와 달리 스펙이 좋은데 도 불구하고 그 또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홍보관에서 노인들에게 사기를 치 면서 젊음을 낭비합니다. 한심하게만 보였던 일상이었는데 그것이 축복이었 다는 것을 혜자가 아빠를 살리기 위해 서 시계를 너무 많이 돌림으로써 갑자 기 늙어버린 후 깨닫게 됩니다. 혜자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 라도 할 기세입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 면 혜자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25살은 사실은 혜자의 과거기 때문입 니다. 지금 늙어버린 현실이 판타지가 아니라 25살 혜자가 치매 노인 혜자가 꿈꾸는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로 잘나가는 후배를 보면서, 종군기자가 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펴는 선배를 보면서 자신의 일 상을 부정했던 그 25살이 사실은 가장 완벽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 은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 람들이 현재가 축복이라는 것을 의식 하지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 을 갖고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드라마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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