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존자와 함께 앗사지 만나 부처님께 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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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8-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화령 정사(불교총지종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1:27 조회 4,904회본문
목련존자와 함께 앗사지 만나 부처님께 귀의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아라한의 도를 갖춘 자가 있다면 바로 저 비구도 그 중의 한 분일 것이다. 그는 누
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가를 물어봐야겠다.
사리푸트라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비범하여 논쟁에서는 그를 당할 사람 이 없었다. 소문난 논사인 자기 아버지 조차도 사리푸트라에게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사리푸트라는 철학 적이고 종교적인 면으로 너무나 뛰어 나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를 당하지 못했 고 이로 인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 러나 사리푸트라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 고 더 훌륭한 스승을 만나 학문을 넓히 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스승을 찾아다 닌 끝에 산자야 벨라티풋타 (Sanjaya Belafthiputta) 라는 사람을 만나 스승 으로 모셨다. 이 사람은 육사외도의 한 명으로 거론되는데 부처님 당시에는 나 름대로 유명한 사상가였다. 그는 그 당 시 가장 큰 나라였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 근처에 250명이나 되 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산자야의 주장은 절대의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또 있다 해도 알 수 없 는 것이라는 회의주의 (懷疑主義) 내지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고 하였다. 그 에 의하면 ‘세상의 철인(哲人)이라고 주 장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장만이 진리 이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모두 오류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느 것이 진짜 진리인 가? 진리란 결국 하나 밖에 없을 것인데 각자가 다 자기의 주장을 진리라고 하여 도 모두 그러한 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유일의 객관적 진리가 인식되어질 수 없 는 한 주관의 입장에서 서로 논쟁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며 그런 시시비비를 버리고 진실된 실천으로 향하는 것이 더 욱 현명하다.’고 했다. 이 사람은 형이상 학적인 모든 의문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 에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불가지론자이기도 했다. 산자야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사후의 세계에 대해 물으 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 고 생각한다면 나는 사후의 세계가 존재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와는 다르다고 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지 않다고도 생 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는 것이 아니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대답이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그를 뱀장어 같은 궤변자라고 했던 것이다. 불가지론은 나 름대로의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모든 것 에 회의를 가지고 객관적 진리를 얻을 수는 없다고 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서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객관적 진리라는 것이 없다는 그 말 또한 하나의 주관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그것도 의심의 대상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 진리 라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는데 어 떻게 진실된 실천이라는 것을 향해 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러한 회의론을 궤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러한 사람들을 외도라고 칭한다.
사리푸트라도 그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밑에서 배우고는 있었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 늘 불만이었다. 산자야 밑에 는 목갈라나라는 고향 친구도 있었는데 이 분이 바로 나중에 ‘신통제일 목련존자’로 불린 그 목갈라나이다. 이 두 사람은 의기투 합하여 마음이 잘 맞았지만 워낙 지혜로 운 사람들이어서 산자야 밑에서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산자야의 주장에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산자야가 유명세는 떨치고 있었지만 바른 도를 찾 아 나선 이들에게 산자야의 불가지론이 양이 차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 서 이 두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참된 스 승을 만나거나 진리를 들으면 나머지 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알려 줄 것을 서로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마침 내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되 었다.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부처님과 만 나게 된 인연은 이렇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라자가 하(왕사성)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 던 때로 보인다. 나중에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된 사리푸트라와 목갈라 나는 앗사지 비구를 인연으로 왕사 성에서 부처님과 만나게 된다. 앗사지 (Assaji, 阿說示, 馬騰)는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최초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 고 아라한이 되었던 다섯 비구 가운데의 한 사람이다. 그는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를 거쳐 오시는 동안 부처님보다도 먼저 라자가하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부처님 께서 왕사성에 오신 것은 바라나시에서 다섯 비구와 야사 등의 제자들과 헤어진 지 약 반년 정도 뒤였다고한다.
하루는 앗사지가 왕사성에서 탁발을 하고 있었는데 사리푸트라가 이를 보고 있었다. 앗사지는 깨달음을 얻어 이미 아라한이 되어 있었는데 탁발을 하며 거 리를 다니는 모습이 아주 의젓했다. 의 복도 단정하고 태도가 품위가 있었다.
경전에서는 앗사지에 대하여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것이 의젓하였고 = 땅을 향하였 다. 이와 같이 그는 훌륭한 몸가짐을 갖 추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당시 불 교의 출가자만큼 여러 가지가 절제되고 품위가 있는 사문들은 드물었던 모양이 다. 그러한 앗사지를 보고 사리불은 이 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아라한의 도 를 갖춘 자가 있다면 바로 저 비구도 그 중의 한 분일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 출 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누구 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가를 물어봐야 겠다.’
아마 그때까지도 사리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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