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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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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08-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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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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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2-11 21:31 조회 3,9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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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밀교문화와 생활 (30회)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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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 정사 (밀교연구소장/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아수라심 (阿修羅心)


『대일경』에서 설하고 있는 중생의 60 가지 마음 가운데 아수라심(阿修羅心), 용심(龍心), 인심(人心)에 대해 살펴보 고자 한다.

아수라는 육도 가운데 하나로서 원래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 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이생에서 욕심 많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죽어서 환생한 축 생이 아수라라고 한다. 이러한 아수라 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기 그지없으며 난 장판으로 만들고 만다. 그러한 난장판 을 흔히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중생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그것이 아수라심이 된다. 마음이 시끄럽고 심란하다면 그 것이 바로 아수라심이다. 『대일경소』 서 아수라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 엇을 아수라심이라 하는가? 그것은 즐 겨 생사(生死)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고 하였다. 어찌해서 생사에 처하는 것이 아수라심인가? 그것은 부처님의 근 본교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릇된 중 생이 오직 쾌락만을 위하여 무명 속에 서 삶을 살아갈 때 그에 따른 고통이 있 게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를 12가지로 나열한 것이 바로 십이연 기설(十三緣起說), 십이인연설(十三因 緣說)이다. 즉 무명으로 인하여 생사 가운데 고통이 따르는데, 고통과 괴로 움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그 마음이 바 로 아수라심인 것이다. 따라서 아수라 심의 시작이 무명(無明)에 의한 것이 오, 무명으로 인하여 생(生)-노(老)-사(死)라는 과정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 으로 살아가게 되므로, 생사에 처한 것 이 바로 아수라심인 것이다. 생사 가운 데 무명과 쾌락만이 존재하는 마음이 다. 그러나 생사 가운데 있게 되는 고통 과 괴로움을 소멸하고 고통과 괴로움 에서 벗어나는 길을 부처님께서는 사 성제 (四聖語)와 팔정도(八正道)로 말 씀하셨다. 좀 더 간략하게 말하면, 지혜 를 증득함으로써 고통과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무명은 지혜가 없 음이오, 지혜 없음이 고통과 괴로움이 므로 무명을 타파하는 것이 바로 고통 과 괴로움을 여읠 수 있는 길이다. 무명 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부처님의 근 본교설에 입각해서 수행하고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근본교설을 공부해 야 하는 이유이다. 사성제와 팔정도 수 행으로써 고(苦)를 여읠 수 있기 때문 이다. 『대일경소』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만약 수행하는 사람에게 생사의 과보와 쾌락을 즐길 뿐 나아가려고 하 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수라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무상(無常)과 고 (苦) 등을 관찰하는 것이 아수라의 마음 을 다스리는 수행이다.” 무상(無常)과 고(苦),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친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오, 지혜이다.

 


용심 (龍心)


중생에게는 용심 (龍心)이라는 좋지 못한 마음이 있다. 용심 (龍心)은 용 (龍)의 마음이란 말로서 광대자재 (廣大資財)를 품고 있는 마음이다. 용은

원래 여의주를 물고 있어 진귀한 보배 와 재물을 마음껏 지니게 하는 상서로 운 동물에 비유된다. 따라서 용심은 보 물과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다. 재물을 탐하는 중생의 욕심을 용의 광대자재 에 빗대어서 말하고 있다.『대일경소』 에서 용심 (龍心)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탐욕이 많고, 이를 싫어하는 생 각이 없는 것이 바로 용취의 마 음이다.” 용취 (龍ft)는 용의 세계로서 탐욕심이 가득 한 세계, 마음을 나타낸 다. 이러한 용심 을 없애는 길은 무엇인가? 『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 다.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 사람의 이익을 구하게 하는 것을 좋아 하고, 출세간의 청정한 마음을 장애하 게 한다. 적게 바라고 만족할 줄 알며, 무상(無常) 등을 사유하는 것이 그 마 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세간적 성취 에만 골몰하고 출세간의 청정을 멀리 하게 하는 것이 용심이라는 것이다. 즉 재물에 대한 탐욕심이다. 그래서 소욕 지족(少飮知足)을 강조하고 있다. 적은 것에 만족하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용 심을 다스리는 길이라고 한다. 재보는 영원하지 않다. 항상 변하고 변 한다. 영원불변하지 않는다. 이를 무상 (無常)이라고 한다. 일체가 무상하다 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무명 (無明)과 고 (苦)를여읠수가있는 것이다.



인심 (人心)


인심(人心)은 사람의 마음이란 뜻으 로, 바로 중생심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나타낸 말 이다. 차별하고 분별하여 이해타산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이다. 아주 계산적 인 사람의 마음이다. 『대일경소』에서 인 심 (人心)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 을 사람이 마음(人心)이라 하는가? 남 을 이롭게 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아무개는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그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하겠다. 아무개 는 나에게 요익하지 않은 바가 있으니 앙갚음을 하리라’하고 생각하는 것이 다. 사람을 구별하고 재물과 이익을 취 하려는 생각은 모두 인심 (人心)이다.”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마음 을 말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수행이 필요하다. 스스로 마음 작용을 관찰하 여 법의 이익을 구할 것이며, 분분하게 다른 연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마음 다스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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