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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는 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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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2-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불교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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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1 05:01 조회 5,5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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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는 게 가능한가?
어쩌다 발견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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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관세음보살 기도처 남해 보리암에 간 적 있습니다. 거기서 20대 초반의 여학생을 만났는데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백일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에 살인이 들어있는데, 그 저주받은 운명을 바꾸기 위해 하루에 3천배씩 절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처럼 기도를 하면 과연 운명이 바뀔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최근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2019)는 독특한 드라마입니다.〈비밀〉이라는 만화 속 세상을 다루고 있는데 자신이 만화 속 캐릭터라는 사실을 모르던 등장인물이 자아를 찾고,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바꾸려 노력하는 게 드라마의 주 내용입니다.

가장 먼저 자아를 찾은 인물은 은단오 (김혜윤)라는 여고생입니다. 사립명문고에 다니는 은단오는 갑자기 순간이동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기억이 사라지고, 미래를 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겪으면서 자신이 만화 속 캐릭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은 자신은 만화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이 학교 일진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여주인공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역할로 자신이 이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분노와 질투를 느낍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자신이 심장병으로 죽을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설정값대로라면 은단오는 스리고의 A3 멤버 중 한 명인 백경 (이재욱)을 10년 짝사랑하다가 심장병으로 죽어야 합니다. 자아를 가진 은단오는 작가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겠다고 벼르지만 자신의 의지로 설정 값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합니다. 그러다가 자신보다도 비중이 약한, 이름조차 없는 엑스트라 13번을 만납니다. 이 소년에게 하루라는 이름을 지어준 은단오는 그와 함께 있을 때 미묘하게 설정값이 바뀌는 걸 확인하면서 어쩌면 하루(로운)를 통해 설정값을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한편 은단오가 자신의 운명을 바꿔줄 것이라고 믿는 13번은 은단오보다도 더비중 없는 엑스트라입니다. 그는 만화에서 얼굴조차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고 이름조차 없습니다. 물론 대사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작가에게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정해진 운명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다오는 작가가 지정한 설정값이 있어 운명에 갇혀 있는 반면에 13번 하루는 아무런 설정값도 없기 때문에 운명도 없습니다. 만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설정입니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작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단오의 운명을 바꿔주기 위해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콘티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화에서 은단오는 죽을 때까지 백경을 짝사랑하지만 백경으로부터 괴롭힘만 당하는 역할이었는데 하루가 등장하면서 에피소드에 변화가 생겨나고, 백경이 은단오를 좋아하게 되는 상황으로 설정값이 바뀌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어쩌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도 가능한것입니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 이게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설정값과 자아라는 문제. 흔히 인생을 연극에 비유합니다. 삶이 연극이고 우리는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연극배우에 지나지 않으며 이 연극에서 우리의 의지는 필요 없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운명론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것이 드라마에서는 설정값으로, 모든 역할은 작가가 설정한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삶과 엑스트라의 삶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주연과 조연의 인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은다오를 비롯한 일부 등장인물은 자기 의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자아를 가진 인간은 자신의 배후, 즉 설계자까지 인식하고, 자신을 이룬 세계를 통찰한다는 것입니다. 은단오를 통해서 보면 설정값을 바꾸는 일이 가능은 했습니 다. 그러니까 운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설정 값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중요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하루가 등장했지만, 하루라는 존재가 나타난 배경에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은단오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온 마음을 다 주었을 때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운명조차 바꿀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설정값이 신의 역할이라면, 자아는 인간의 영역입니다. 좀 더 나아가 설정값이 기독교적 신관이라면 자아는 중생이 곧 부처라는 불교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적 세계관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의 창작입니다. 신이 관여하지 않은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앞에서 기도를 통해 운명을 바꾼다고 했는데 힘든 절을 하면서 운명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인간의 의지였으며, 그래서 운명도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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