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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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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2-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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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법정원 수석연구원/ 법천사 주교/ 동국대 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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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1 04:17 조회 5,2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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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10
밀교문화와 생활 33

중생의 마음이 짐승에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이심, 구심, 가루 라심, 서심, 사자심, 휴유심, 오심 등이 그러한 예다. 모두 짐승과 관련된 마음이다. 

이심은 살쾡이의 마음이다. 즉 은혜를 알지 못하는 마음이다. 구심은 개의 마음이다. 현실에 안주하여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는 마음이다. 가루라심은 독수리와 같이 사납게 생긴 상상의 동물 가루라에 비유한 마음인데, 언제나 큰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는 것처럼 혼자서는 해내지 못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맹수의 새인 가루라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심은 쥐의 마음이다. 이치에 어긋나더라도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마음이다. 사자심은 자기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휴유심은 수리부엉이와 올빼미와 같은 마음으로, 선법을 들어도 어두운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오심은 까마귀의 마음이다. 원망하고 협박하는 마음과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까마귀에 비유한 것이다.

짐승과 같은 마음은 이외에도 독사나 여우 등등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다.『대일경』에 언급된 중생의 마음 가운데 짐승에 비유된 마음은 위에서 열거한것처럼 7개정도가 있다.

이심

이심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살쾡이의 마음이다. 왜 중생의 마음을 살쾡이에 비유하는가. 그것은 배은망덕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개는 주인을 알아도 고양이나 살쾡이는 주인을 잘 따르지 않는 것이 일반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고양이는 요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집에서 키우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반려동물로 사람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키워놔도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여전하다고 생각된다. 어쨌거나 살쾡이를 좋지 않은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대일경소』에서 살쾡이의 마음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이심(살쾡이 마음)이라고 하는가. 서서히 나아가는 법에 따라 닦는 것을 말한다. 즉 고양이나 살쾡이가 짐승이나 새를 사로잡으려고 숨을 죽이며 조용하게 있다가 힘써서 빨리 나아가지 않고, 어느 정도 안에 이르기를 기다린 다음에 잡는 것처럼 사람도 그러하다. 우연히 갖가지 법요를 들었더라도 다만 작심하여 받아들이고 기억하여 지닐 뿐 나아가서 행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기다리는 가운데 좋은 연을 만나면 용건하게 힘써서 이를 행한다. 또한 고양이나 살쾡이를 갖가지 자애로써 길렀을지라도 은혜를 알지 못 하는 것처럼, 만약 사람이 남으로부터 자비로운 은혜와 좋은 말을 받았을지라도 갚을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살쾡이의 마음이다.’ 

기회주의적인 사람, 배은망덕한 마음, 계산적인 사람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 같다. 즉 이심은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자기에게 유리하면 나서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한다. 또 좋으면 삼키고 싫으면 내뱉는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다. 이를 다스리는 법은 선법을 즉시 행하고 항상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은 대로 곧장 행하며, 언제나 은덕을 생각하여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살쾡이 같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수행자라 하면서 살쾡이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더러 있다. 쉽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제행이 무상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생을 사는동안 배은하지 말고 배신하지도 말자.

구심

구심은개의 마음이다. 좋은 의미가 아니라 나쁜 의미로 쓰였다. 소극적인 마음으로 표현된 것이다.『대일경소』에서 구심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을 개의 마음이라 하는가. 작은 것을 얻고서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소욕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심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개는 박복한 연 때문에 기대 하는 것이 하열하다 그래서 우연히 거칠고 천한 음식을 조금이라도 얻으면 문득 기뻐서 만족해한다. 만약 조금이 라도 이에 넘치면 본래 바라는 바가 아닌 것과 같이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극히 일부분의 선법을 들었으나 이것이 수행의 전부가 아닌데도 다시 뛰어난 수행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의 좋지 못한 마음을 개의 마음에 비유했다고 생각된다. 조금 배웠다고 우쭐대는 마음, 조금 안다고 아상과 아만으로 자만과 오만, 교만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정진이 부족한 사람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 상황에 벗어나지 못하고 나태해진 사람이다. 이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만과 교만에 빠져 있으니 자기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수행자의 참모습이다. 그래서『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더 높이 나아가려는 의지로써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큰 바다가 적어도 거부하지 않으며, 많아도 넘치지 않는 것처럼 그 마음을 써야 한다.’

앞의 그 마음은 개의 마음이고, 뒤의 마음은 하고자 하는 의지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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