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시간 체험과 명상, 마음으로 전해지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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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4-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미얀마 순례기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천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천 작가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4:32 조회 5,759회본문
김천 작가의 미얀마 순례기<마지막 편>
미얀마는 역사의 호리병이다. 불교의 옛 가르침을 받아들여 고스란히 담아두고 있다. 바간은 미얀마에서도 가장 오랜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미얀마를 찾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바간을 놓치지 않는다. 바간에 가면 과거 미얀마의 영광과 불교문화의 장엄함을 만날 수 있다. 상좌부 테라와다 불교는 바간 시대에 정착했다. 오늘 미얀마 불교의 모습은 그 시대의 유산인 셈이다.
바간 유적은 대략 1,000년 전의 것들이다. 메마른 대지 위에 약 2,000개 이상의 파고다가 퍼져있다. 눈 닿는 곳 어느 곳에도 불탑이 있다. 다보여래가 수많은 불탑의 형상으로 등장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의 장면이 현실에 펼쳐진 모습이다. 미얀마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대지를 장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받아들여 지켜온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바간의 수많은 파고다 중 눈에 띄는 몇 곳이 있다. 그중 이라와디 강가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로카난다 파고다는 불탑의 어머니란 별명을 갖고 있고 그 뜻은 ‘세상의 안락’이다. 예전 바간이 수도였을 때 교역을 위해 배들은 벵골만에서 이라와디 강을 거슬러 바간까지 항해하였는데, 로카난다 파고다는 긴 항로의 등대역할을 하였다. 빛나는 황금탑을 보며 긴 항해가 무사히 목적지에 닿았음을 안도하였을 것이다. 스리랑카의 테라와다 불교가 전해질 때 부처님 치아사리도 함께 이운됐는데 로카난다 파고다에 그 일부를 모셨다. 험한 인생항로의 종착지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굳게 믿는다면 이 로카난다 파고다를 등대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로카난다 파고다 인근에는 사미승들이 수행하는 수도원이 있다. 관광지에서도 떨어져있고 인적도 없는 곳인데 잘 갖춰진 수도원에 약 300명 이상의 사미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간다. 사시 때가 되면 인근마을과 단체의 불자들이 공양을 준비하여 수도원으로 온다. 발우를 들고 순서대로 공양물을 받아 식사를 마칠 때까지 불자들은 이리저리 살피며 부족한 것들을 채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양 때 엄숙하던 어린 승려들도 식사를 마치면 천진하게 웃으며 노는 모습은 인상 깊다.
바간의 파고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쉐지곤 파고다이다. 바간 최초의 파고다이고 미얀마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처음 확립한 불탑으로 알려져 있다.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머리 뼈와 앞니 사리를 안치하였다고 전한다. 사리를 등에 실은 코끼리가 바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멈춰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불탑은 화려하고 잘 보존돼있으며 바간의 파고다 중 으뜸으로 꼽힌다. 그밖에도 일몰로 유명한 쉐산도 파고다, 보는 방향에 따라 부처님의 다른 표정을 볼 수 있는 아난다 파고다, 보드가야의 대탑을 본뜬 부파야 파고다 등 어느 곳을 들러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바간은 세계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이름 높다. 하지만 불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관광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대한 건축물은 언제라도 세우고 부술 수 있지만, 마음속 믿음과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은 쉽게 세우지도 가볍게 허물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장엄한 신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대지 위 지평선 끝까지 닿은 바간의 파고다들이다.
미얀마를 찾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기 위한 관광이고, 둘째는 명상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명상 열풍의 근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얀마가 있다. 미국 명상지도자 1세대 인물인 조셉 골드스타인이나 샤론 살즈버그 등은 모두 미얀마의 위빳사나 명상법을 배우고 수행한 후 서구세계에 불교와 명상을 전한 이들이다. 그들의 영향과 미얀마식 수행센터의 매력 때문에 미얀마를 찾는 이들은 줄을 잇는다. 가르침을 배우러 세계에서 찾아온다는 사실은 놀랍다.
미얀마의 명상센터들은 대부분 후원자들의 시주에 의해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수행을 원하는 이라면 신분과 인종, 성별에 상관없이 찾아가 머무를 수 있다. 그에 필요한 것들을 차등 없이 제공한다. 때에 맞춰 법문을 들을 수 있고, 수행의 상태를 상담하고 점검받을 수 있다. 묵을 곳과 먹을 것을 차별 없이 제공한다. 사뭇 이상적이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미얀마 불교는 해내고 있다.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에 하나인 마하시 수도원은 양곤 시내 쉐다곤 파고다 인근에 있다. 수도원은 넓은 터를 잡았다. 인근에는 마하시 수도원 뿐 아니라 대형 명상센터가 여러 곳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수도원 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공양 등 행사를 위한 대형 홀이있고 오른쪽으로 여성 수행자들의 명상홀이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법문이나 강의를 위한 큰 건물도 보이고, 수행자들이 기거하는 작은 집들이 줄지어 있다. 인적은 찾기 어렵고 넓은 수도원이 내내 적막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넓은 홀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육신과 마음을 살피고 있다. 고요하며 집중하는 모습으로 모든 행동은 절제된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재가자와 승려들이 함께 자신의 수행에 몰두하고 있다. 넓은 홀 안에서 혹은 바깥 주변에서 동작 하나 숨결 하나를 놓치지 않고 살피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잡담을 하거나 동요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수도원 여기 저기 수준과 단계에 따라 수행하는 여러 공간이 있고, 길에서 느리게 걸으며 자신를 살피는 이들도 있었다. 공기는 무겁지 않았고 겉보기에도 수행은 진지해 보인다. 열반은 자유이며 그 자유를 향하는 길을 나름대로 고요히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유산은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이 있다. 건물과 의식 등의 유형의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가르침과 신심이다. 불법의 생명력은 앞 다투어 짓는 거대한 건물과 과시적인 교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가르침에 대한 확신으로 심밀과 육행을 끊이지 않게 이어가는 노력이 불교를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미얀마를 통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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