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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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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4-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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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4:09 조회 13,1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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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심뽀 이야기 6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 촉법이란 경구가 있다. 안이비설신의는 인간이 가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하고 느껴지는 것을 색성향미촉법이라 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6근으로 표현하고, 6근을 통해 인식되어진 대상을 6경이라 한다. 6근이 각각의 감각 대상인 6경을 만날 때, 각각의 감각 장소인 6근을 통해 각각의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6식이라 한다. 즉, 안식‧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이다. 초기 불교에는 6식까지만 있는 것으로 봤다. 이상과 같이 6근이 6경을 만났을 때를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6식이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이 18가지 범주로 나누어졌음을 알게 되는데, 이것을 모두 합쳐 18계라고 한다. 즉 6근 ‧ 6경 ‧ 6식을 합한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는 눈‧ 귀 ‧ 코 ‧ 혀 ‧ 몸뚱이(피부) ‧ 마음(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즉 6근과 그 대상인 물질 ‧ 소리 ‧냄새 ‧ 맛 ‧ 촉감 ‧ 사물 혹은 현상의 6경, 그리고 이 6근 ‧ 6경을 연으로 해서 생기는 여섯 가지 마음의 활동, 즉 6식을 합한 것이 18계이다.

5식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을 말하며, 제6식인 의식과 구분해서 앞에 있는 다섯 가지 식이란 점에서 전5식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의식은 전5식 다음의 제 여섯 번째 식이라는 의미에서 제6식이라 칭한다. 이처럼 5근이 5경을 만나 일어나는 식을 전5식이라 부르는데, 이 전5식은 매우 현재적 이어서 당장 느끼는 대로 생겨나는 인식이다. 이와 같이 식 가운데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등 전5식은 안 ·이 · 비· 설 · 신 등 5근이라는 육체의 다섯 부분에 의지해 활동하는 심식들이다.

여섯 가지 식으로 초기불교가 심식에 대한 설명을 하였지만, 대승불교 유식에서는 8식설 즉 여덟 가지의 심식으로 정리하게 된다. 그 중에 기본적으로 6식이 그대로 유식에 받아들여지고, 여기에 제7식과 제8식을 포함해서 여덟 가지의 식으로 나누는 것이 정리된 유식의 특징 중의 한 가지다. 이렇게 해서 작게는 여덟 가지의 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크게는 전5식과 제6식을 하나로 묶고, 제7식과 제8식을 더하여 세 가지의 식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들 심식은 능히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의미로 능변식이라 한다. 가장 근원이 되고 발생순서가 앞서는 제8식이 초능변식, 또는 제1능변식이 되고, 제7식이 제2능변식이 되며, 전5식과 제6식이 합하여 제3능변식이라 불린다.

불교에서는 존재의 인식방법을 외부세계에서 출발점을 삼지 않는다. 철저하게 존재의 근원인 ‘나’의 감각기관에서 출발하여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타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불교는 존재의 출발점인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허망한 ‘나’와 망상된 ‘세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6근은 ‘나’라고 착각하지 않고, 대상인 6경을 ‘세계’라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허망한 것임을 가르친다.

특히 유식학은 대상인 물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대상보다 오히려 인간의 인식을 중시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인간의 인식작용이 무한하듯이 또한 물질적인 대상도 다양한 각도로 보여 질 수 있다. 물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로 인간의 인식범위가 넓어진다면 물질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물질적인 풍요에 의하여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질의 개발과 함께 인간의 내면적인 수행과 노력으로 바른 인식을 얻고자 노력해야하며 이를 통하여 바른 행위를 하게 되고, 그 행위를 통해서 행복을 달성하고자 하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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