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글로 전하는 설법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수현 정사 설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8-21 15:25 조회54회

본문

지혜로운 삶

- 수현 정사 -

 

우리는 지혜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합니다. 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어느 날, 수행 중이던 스님이 큰 스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하고 거창한 질문을 하였지요. 그러자 큰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조고각하(照顧脚下), 네 발 밑을 보아라.”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거창하고 큰 깨달음에 대하여 고민하지 말고, 오직 현재를 잘 살피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본인의 현실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거창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께서 팔만 사천가지 법문을 하셨다지만, 사실 우리가 오직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도 큰 깨달음입니다.

요즘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타인의 불행입니다. 남의 집에 불이 나고, 누가 사기를 당하고, 누군가는 싸움을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과 에너지를 쏟기도 합니다. 정작 자신의 현실에 쏟아야 하는 에너지를 남에게 낭비하는 꼴입니다.

우리가 불공을 할 때만큼은 참 마음이 편합니다. 그때만큼은 진실로 부처의 마음을 갖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우친 것 마냥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염주를 놓고 다시 나의 현실로 돌아갔을 때, 그 마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삶을 놓고 언제까지 세상 만물의 이치만을 탐구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달마가 왜 서쪽으로 갔는지 궁금해 하지 말고 현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크고 거창한 것에만 가치를 둘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불공을 하며 그저 가족의 평안과 무탈을 바라는 것도 부처의 마음입니다.

어떤 절에 아주 큰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절의 랜드마크이기도 하여 절 초입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요. 그 그림 앞에 어떤 맹인이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절에 다니는 보살이 그 모습을 보고 참 좋지 못하다고 생각을 했지요. 랜드마크와 같은 커다랗고 예쁜 그림 앞에 걸인이라니요. 그렇게 생각만 하며 몇 날 며칠을 지냈습니다. 어느 날은 밤늦게 절에 갈 일이 있어서 갔는데, 그 맹인 이 늦은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맹인은 너무도 익숙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지팡이를 짚으며 대웅전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보살께서 그 모습을 보고 생각하기를 대웅전에서 잠이라도 청할 요량 인가보다.’ 싶어서 그 맹인을 따라갔습니다. 대웅전에 들어선 맹인은 또 다시 너무도 익숙하게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자신이 적선 받은 돈에서 일부를 희사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보살은 행색으로 남을 판단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크게 뉘우쳤습니다.

보시나 적선은 항상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적선을 받아서 술을 먹을 수도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었지만 부처께 희사하는 마음은 아주 훌륭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가는 곳 마다 내가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본인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합니 다.

루소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색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해서 아침이면 눈을 뜨고 운동을 하기 위해 공원을 한 바퀴 돈 후 의자에 앉아 사색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은 사색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리 한 쪽이 없는 아이가 구걸을 하는 모습 을 보았습니다. 루소는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겨 아이에게 적선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크게 기뻐하며 루소에게 감사함을 표시했습니다. 아이가 기뻐하자 루소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에게 기분 좋은 적선을 하는 것으로 루소의 하루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패턴이 매일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예전만큼 기뻐하지 않았으며, 루소도 처음처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비가 많이 내려 루소가 평소보다 늦게 공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늦었다는 생각에 급하게 나온 루소는 깜빡하고 돈을 챙기지 못하였습니다. 아이를 만난 루소는 늦음과 돈을 챙기지 못했음에 미안함을 표시했으나 아이는 서운한 기운 을 영 숨기지 못했습니다. 나중엔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루소는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기다린 것이 아니고 오직 자신의 돈을 기다렸고, 또 자신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아이에게 계속해서 적선을 할 것이 아니고, 올바르게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다음날 아이를 만난 루소는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을 것이며, 네가 올바르게 살 방법을 일러주겠다고 말하며 아이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원에도 적선을 원하고 오시는 분들이 찾아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적선을 했을 때 밥을 사 먹을 사람인지, 술을 사 마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일단 서원당에 가서 삼배 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삼배를 하고 난 후에는 작은 성의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부처님께 올린 정성만큼의 복은 자신이 지은 만큼 받아간다고 했습니다.

요즘 불공 열심히 하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네 그렇습니다, 하고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다들 자신의 현실이 바쁘고 급하여 불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먹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봅시다.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염송을 외고, 염주를 쥐며, 남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