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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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 정사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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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10 16:23 조회181회

본문

 

인 과 법 칙


원당 정사 -

 

불교에서는 항상 인과의 법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처께서 깨우친 연기법의 한 부분으로 본인이 저지른 인에 의한 과오를 받는 것이지요.

업인과보 삼세윤회라 하였습니다. 업이 원인이 되어 과보를 받는 것이지요. 선인선과 악인악과, 선한 일을 받으면 즐거운 업을 받고 악한 일을 지으면 괴로운 업을 받는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지어서 받는 것 입니다. 자작자수라 하였지요.


어떤 절대자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의 주체는 바로 나입니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언젠가 선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괴롭다면 그 괴로움의 원인 역시 나에게 있는 것이지요.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욕지내생사 금생작자시라 하였습니다. 내가 금생에 받는 모든 것은 전생에 지은 바에 따른 것이며, 내 생의 인과를 받을 것은 금생에 지은 것에 따른 것이지요. 내가 지은 업에 의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삶은 내생의 모습을 짓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악업을 지었는데도 괴롭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하게 하는데도 생활이 녹록치 않은 경우도 많지요. 그렇다고 이것이 인과에 어긋나는 것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업인과보 삼세인과라 하였습니다. 전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라 합니다.

금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받기도 합니다. 그것을 순현보라 하지요. 금생에 지은 것을 혹은 전생에 지은 것을 내생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순후보입니다. 당장은 나타나지 않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받게 되어있습니다. 당장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요. 열매도 때가 되어야 익는 법입니다.

금생에 지은 업을 아직 받지 못하는 것은 전생의 업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업이든 빨리 받는 것이 좋겠지요. 전생의 업이 두터운 사람은 금생에 복을 지어도 금생에서 받기 어려운 법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지어서 받는 자작자수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라 할 수 있겠지요.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은 금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금수의 세상이라 하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 할 수 있지요. 인간세계의 우주법칙은 그와 다릅니다. 내가 즐겁다면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좋은 일을 짓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지금 내가 괴롭다면 그 괴로움의 원인 역시 내 안에 있습니다. 악업을 짓지 않도록 노력하고 선업을 지어 상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과의 법칙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생활입니다.

옛날 중국 당나라에 백장선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선종에서 유명하신 스님이지요. 일불식이면 일불작이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계율을 지키셨습니다. 생활불교의 원조로 보아도 좋겠지요.

이 스님이 설법을 할 때마다 와서 늘 지켜보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설법이 끝나고 노인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저는 원래 사람이 아니라 여우입니다. 전생에 이 사찰의 주지였지요. 그런 제게 어느 날 누군가 저에게 묻기를, ‘참수행인은 인과에 걸리지 않느냐묻기에 불락인과. 참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하였습니다. 그 말 때문에 저는 여우의 몸을 받아 500년을 갇혀있습니다. 저를 바른길로 인도해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장선사가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해보세요.” 선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인은 질문 하였습니다. “참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선사는 대답했습니다. “불매인과. 인과에 미혹되지 않는 법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크게 깨달음을 얻어 스님께 절을 하였습니다. “뒷산에 가면 저의 시체가 있습니다. 장례를 부탁드립니다.” 노인은 백장선사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산에 가보니 과연 노인의 말대로 여우의 시체가 있었고 백장선사는 스님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행 과 인과는 별개로, 수행을 한다고 하여 인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과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인과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나인 것을 아는 것 이지요. 내가 괴로울 때는 내가 괴로워하는 것에 대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염송입니다. 우리가 하는 염송은 바로 비로자나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것이지요. 법문을 통해 나의 과오를 깨닫고 그 과오를 참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산대사가 말씀하셨습니다.

금생에 지은 업은 고치기 쉬우나 전생의 업은 알 수 없으니 전생의 업을 지우기 위해 염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언을 염송하는 이유입니다.


보통 법문이네, 하는 말을 자주들 쓰시지요. 법문의 다른 말은 인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를 찾고,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평소에는 늘 바깥세상을 향합니다. 하지만 염송을 할 때엔 내 안으로 마음을 향하게 합니다. 본심을 찾는 것이 지요.

총지종의 수행은 염송과 육행실천 삼밀수행입니다. 우리가 늘 염송하는 옴마니반메훔은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으로 본심을 일으키는 진언입니다. 본심을 찾는 진언이지요. 나의 허물을 들어내고 본심을 찾아 참회하고 선업을 짓는 것이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정해진 숙명론, 운명론과는 다릅니다. 진언을 외는 것은 전생과 금생의 업을 잘 다스려서 운명을 개척하는 행위입니다. 인과에는 생략된 글자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연입니다. 연에 따라 연이 달라져 과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연이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씨앗을 심는 행위를 인, 그리고 그 씨앗을 키우는 것들을 연, 그 결과물을 과라고 가정했을 때, 아무리 품종이 좋은 씨앗을 심어도 날씨가 나쁘거나 제대로 된 비료를 주지 않는다면 좋은 열매로 성장하기 힘들 것입니다. 반대로 평범한 씨앗을 심어도 지극정성으로 햇빛을 쬐어주고 물을 주고 비료를 준다면 아름다운 과실을 맺을 수도 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인을 지어도 나쁜 연이면 과도 나빠지기 마련이지만 나쁜 인을 지었지만 좋은 연을 만난다면 과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인과는 피할길이 없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만난다

악한 열매가 익은 뒤에는 악한 사람도 죄를 받는다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화를 만난다

선의 열매가 익은 뒤에는 착한 사람도 복을 받는다

허공 위에나 바다 속에나 깊은 산중에 숨어들어도

내가 저지른 악업 재앙은 언제 어디나 피할 곳 없네

 

-불교총전2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