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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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 정사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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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10 16:20 조회93회

본문

  

육바라밀 실천을 통한 수행과 기도


- 법우 정사 -

 

정진의 힘으로 선정에 이르고, 선정의 경지에서

반야의 지혜를 얻어 일상생활 속에서 보시 및 인욕, 지계를 실천


 

사람은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행복과 해탈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면 행복과 해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폭포처럼 흐르는 마음을 잘 다스려 걸림이 없는 삶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근만근이나 되는 업장을 소멸하고 윤회의 사슬을 끊어내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서 불자로서의 삶의 목적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서 요구되는 것이 수행과 기도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몸과 마음을 닦아 지혜를 얻어 윤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수행이라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윤회를 끊어 해탈에 이르는 것이 기도라 할 수 있지요. 전자가 자력적이라면 후자는 타력적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기도는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무작정 절대자에게 바란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무언가를 이룰 수 있도록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강합니다. 나아가 그런 다짐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굳세고 튼튼해져 쉽게 좌절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는데 기도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과 기도에서 모두 요구되는 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집중입

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 집중 속에서 깊은 삼매에 들게 됩니다. 이 삼매의 경지에서 지혜를 얻는 것이 수행이라면 가피력을 얻는 것이 기도입니다. 특히 염송할 때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쉬지 않고 수행하면, 산만한 마음을 안정시켜 마음이 맑아지게 됩니다.

기도나 수행에 들어가기 앞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참회(懺悔)입니다. 참회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온갖 잘못된 편견과 행위, 독선에 가득 찼던 자신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앞으로 이러한 잘못을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러한 참회로 말미암아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그래서 참회의 행위 자체만으로도 업장이 소멸된다고 해서 참회만을 별도로 떼어내어 기도 내지는 수행의 방법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행하는 것에 한 가지가 더 가미되어야 합니다.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 실천입니다.

육바라밀은 대승불교의 보살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여섯 가지 해탈에 이르는 길을 간명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바라밀이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 바라밀을 말합니다.

첫째 보시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베푸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을 베풀어 괴로움에 빠진 이웃의 마음에 평화를 주며, 물질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재물을 베풀어 기쁘게 해주며, 진리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는 감로의 법문을 내립니다. 이름하여 나의 지식, 나의 재산, 나의 사랑, 나의 말, 나의 모습 그 모든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나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평화를 주는 밑거름이 되지요. 자비의 실천은 이런 데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둘째 지계란 계율을 지키며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올바로 행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스러운 말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며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는 도덕적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욕이란 참고 감내하는 행위입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치거나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거기에 굴하거나 성내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인내하면서 극복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내지 않고 길게 용서하며 참아내는 행위는 내 마음은 물론 이 사회를 조화와 평화로운 상태로 이끌게 됩니다.

넷째 정진이란 끊임없는 불굴의 노력을 말합니다. 적당히 쉬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흐트러짐이 없이 마음과 몸을 다해서 움직이며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보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이며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일체의 망상을 접고 쉼 없이 마음을 다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선정이란 정진을 통해 마음이 어느 한 대상에 집중되어 통일된 상태

를 일컫습니다. 그렇게 통일된 상태에서는 나도 잊어버리고 상대도 잊어버립니다. 그저 맑고 순수한 의식만이 살아 숨 쉴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순간에 사태를 아무런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물의 실재를 정확히 응시하는 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여섯 번째 반야(般若)라 합니다. 이러한 반야의 지혜로 관조하여 나와 너의 분별, ‘라는 의식조차도 떠나기 때문에 보시를 함에 있어서도 무차별적 보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요 인욕행을 실천함에 있어서도 라는 그림자조차 없기에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바라밀의 근저에는 지혜바라밀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수행의 목적이 지혜를 얻기 위한 과정이란 점에서 반야바라밀의 실천이야말로 대승불교 최상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을 요약하여 정리해 보면 정진의 힘으로 선정에 이르고, 선정의 경지에서 반야의 지혜를 얻어 일상생활 속에서 보시 및 인욕, 지계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하여 나는 물론 이 사회가 맑고 깨끗해져 불국토가 실현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이요, 참 불자의 신행생활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도와 수행도 육바라밀의 실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참조:<설법자료집 제4> 2017년 밀교연구소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