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밀교의불보살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심층밀교는 법경 정사(밀교연구소 소장/법천사 주교)가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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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四佛)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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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0-28 09:03 조회4,3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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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칠불암의 삼존불(왼쪽)과 사면불(오른쪽)                               경주 금강산 불굴사지의 석조사면불상(石造四面佛像)

지난호에서는 비로자나불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우주 삼라만상과 일체의 진리’를 부처님에 비유하여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합니다. 이 부처님을 비로자나불이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부처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네 분의 부처님이 계시는데 이것을 사불(四佛)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불(四佛)은 본초불(本初佛)인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다시 여러 부처님으로 분화(分化)해서 출현한 부처님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불(四佛)은 태장계만다라의 사불과 금강계만다라의 사불이 있습니다. 태장계만다라의 사불(四佛)은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방(東方)의 보당여래(寶幢如來), 남방(西方)의 개부화왕여래(開敷華王如來), 서방(西方)의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 북방(北方)의 천고뇌음여래(天鼓雷音如來)가 있습니다.
    금강계만다라의 사불(四佛)로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東)에 아축불(阿?佛), 남(南)에 보생불(寶生佛), 서(西)에 아미타불(阿彌陀佛), 북(北)에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불은 명칭도 다르지만 그 방위(方位)도 다릅니다. 태금(胎金) 양계만다라(兩界蔓茶羅)의 방위가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태장계만다라는 위가 동(東)이고, 아래쪽이 서(西)이며, 반대로 금강계만다라는 위가 서(西)이고 아랫쪽이 동(東)이기 때문입니다. 만다라의 방위가 서로 다르므로 사불의 배치도 다릅니다. 양계만다라를 친견할 때 사불의 방위(方位)를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방위(方位)를 말할 때, 오른쪽이 동(東), 왼쪽이 서(西)이고, 위가 북(北), 아래가 남(南)이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입니다만 인도의 양계만다라의 방위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일천한 저로서 아직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양계만다라도 위아래의 방위가 서로 다른 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을 알고 계시는 분은 저에게 도움말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게는 아주 좋은 공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금 양계만다라의 사불(四佛)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방(四方) 사면(四面)에 네 분의 존상(尊像)을 배대한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바로 경주 남산의 칠불암(七佛庵)입니다. 칠불암은 KBS의 1박2일에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칠불암이 사면(四面)에 네 분의 존상(尊像)을 조각해놓았다는 점에서는 오불(五佛) 배치의 형식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칠불암의 사방불은 높이가 2.23m 내지 2.42m 정도로 바위 모양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고 있는데, 네 상(像) 모두 연화좌대(蓮華坐臺)에 보주형(寶珠形)의 두광(頭光)을 갖추고 결가부좌를 취하고 있습니다. 동면(東面)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여래가 새겨져 있고, 남면(南面)과 서면(西面)에는 동면상(東面像)과 비슷한 여래가 있고, 북면(北面)에는 동서남(東西南)의 다른 세 불상과 다른 형상을 한 여래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네 상의 명칭을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방위(方位)와 수인(手印)·인계(印契) 등을 살펴 볼때 동면상은 약사여래, 서면상은 아미타여래로 보고 있습니다. 밀교를 공부하는 저로서는 칠불암을 양계만다라의 사불(四佛)과 비교해서 상관관계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장조사와 자료조사를 해볼 생각입니다.

    이 칠불암의 가장 큰 특징은 사방 석주 각 면에 한 불상씩 사방불을 새기고, 그 앞의 바위에 삼존불을 새겨 놓았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그 삼존불은 바로 중앙 본존불(本尊佛)의 성격을 띠고 있고 사면의 사불상(四佛像)은 바로 중앙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는 사불로서 오방불(五方佛)의 배치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방 사면불의 양식은 또다른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경주시 동천동(東川洞)의 금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굴불사지(掘佛寺址) 석조사면불상(石造四面佛像)입니다. 굴불사지는 백률사로 올라가는 산 입구에 세워졌던 절로서 지금은 절터와 석불입상군이 남아 있습니다. 산중턱에 있는 백률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를 국법으로 허용해줄 것을 주장하다 순교한 이차돈(李次頓)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던 절입니다. 원래는 자추사라고 하였습니다. 신라의 왕성인 반월성(半月城)에서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목이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진 자리에‘자추사’라는 이름의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나중에 백률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굴불사지의 석조사면불상(石造四面佛像)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불보살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동쪽에는 약사여래불, 서쪽에는 아미타여래불, 남쪽에는 석가모니불, 북쪽에는 미륵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방불(四方佛)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서방의 아미타여래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사불(四佛)과는 다른 형태의 배치라고 보여집니다.
 
   굴불사에 대한 자료는『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서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掘佛寺)라 하였답니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군의 서쪽에는 삼존불이 있는데, 불상의 형태로 보아서 아미타삼존불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동면에 약사여래, 남면에 석가모니불, 북쪽에 미륵불이라고 하는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특정지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쉽게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위의 사면에 사방불(四方佛)을 새겼다는 점은 만다라의 사불(四佛)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불의 배치는 바로 신라의 국토를 만다라의 세계로 나타내고 싶은 신라인의 여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 중심이 바로 경주의 남산(南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산에는 수많은 사찰과 탑, 마애석불이 존재하는 불교의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국토를 만들고 만다라의 세상으로 만드는 그 출발은 바로 본존불을 중심으로 한 사불(四佛)의 배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호에서 태금 양계만다라의 사불(四佛)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출처:문화재청)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의 동면(東面) 불상
서면(西面)의 아미타삼존불
 남면(南面)의 불상
 북면(北面)의 불상 
     
                     법경 정사/밀교연구소 연구원/ 법천사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