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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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관음보살 (馬頭觀音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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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1-02 09:36 조회14,071회

본문

마두관음(馬頭觀音)은
중생구제의 대세력(大勢力)과 용맹정진력(勇猛精進力)을 상징
 
부처님이나 보살의 머리에 여러 가지 형상들이 올려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특이하게 말(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보살이 있습니다. 그 보살이 바로 마두관음보살(馬頭觀音菩薩)입니다. 그런데 왜 마두관음보살은 머리에 말의 형상을 하고 있을까요?
이 마두(馬頭)는 바로 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의 대원(大願)과 자비심이 아주 크고 강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오로지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나투신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중생구제에는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모든 짐승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람을 구제하고자 나투실때는 사람의 모습으로, 짐승을 구제할때는 짐승의 모습으로 나투십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은 사람만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구제하는 보살이므로 그 구제대상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투시기 때문입니다. 원래 중생이 짐승에서 나온 말인데, 이를 감안한다면 구제 대상에 사람과 짐승, 모든 생명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즉 사람을 구제하고자 할때는 천수관음, 십일면관음, 준제관음, 여의륜관음 등으로 나투시고, 뭇짐승들을 구제하실때는 마두관음보살로 나투시는 것입니다.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투시므로 이 관세음보살을 일러서 변화관음(變化觀音)이라고 합니다.
이 마두(馬頭)의 형상에서 사람과 짐승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시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의 광대무량한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대자비심에는 사람과 짐승의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말(馬)의 형상을 하고 있을까요?
 
▶ 삼면이비(三面二臂)의 마두관음상
 
 
인도신화의 비슈누신에서기원한 것이 마두관음
이 마두관음(馬頭)은 인도신화(印度神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대인도의 베다에 나오는 유지(維持)의 신(神)인‘비슈누신’의 열 여덟 번째의 화신(化身)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비슈누는 인도 힌두교의 3대신(大神)으로 시바와 함께 크게 신봉되는 신입니다. 3대신은 브라만, 비슈누, 시바인데, 브라만은 창조, 비슈누는 유지, 시바는 파괴의 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슈누는‘세상이 어지러울 때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지상에 부활하는 신’으로 이 세상에 나타날 때는‘성인(聖人)’이나‘영웅’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히 그 비슈누는 변화의 화신으로 불릴 정도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악을 타파하는 무서운 신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생들에게 한없이 이익을 베풀어주는 자비로운 신이라고 합니다. 그 비슈뉴의 화신(化身)이 말머리를 하고 나타나서 브라만의 원수를 갚는다고 합니다.
또한 말은 고대 인도 대륙에서 소와 더불어 여러 가지 면에서 신성시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말에 대한 제사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말의 신성성이라든가 말의 위력을 강조한 결과 말머리를 한 모습으로 관음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마두관음(馬頭觀音)로, 산스크리트어로는 하야리바(Hayagriva)라고 하며 ‘말 머리, 말 갈기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슈누가 변화하여 나타난 것은 마치 관음보살이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투신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힌두교의 비슈누신이 불교에 유입되면서 관세음보살의 변화관음으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밀교에서 마두관음을
'대력지명왕(大力持明王)’ 이라 칭함
그래서 이 마두관음을 밀교의 양부대경 가운데  하나인『대일경』에서는‘대력지명왕(大力持明王)’이라 칭하기도 합니다.‘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는 명왕’이란 뜻인데, 그 힘이란 바로 중생들의 신심(信心)과 관음보살의 중생구제의 용맹심(勇猛心)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維持)시켜주는 힘을 가리킵니다. 이를『대일경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보배로운 말(寶馬)은 언제 어디서나 쉬지 않고 달리는 것처럼,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의 커다란 정진력에 비유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마두관음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는 말에 비유해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계속해서『대일경소』에는 마두관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은 동물 중에서도 특히 수초(水草)를 찾아 먹으나, 말 중에서도 굶주린 말이 식욕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처럼, 보살 중에 관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며, 그 중에서도 마두관음(馬頭觀音)은 중생구제의 마음이 매우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마두관음의 성품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여러 동물 중에 말(馬)이 관음보살의 머리에 새겨져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생을 구제하려는 관음보살의 대자비심을 말(馬)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와같이 마두관음이 말 머리를 이고 있는 것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보마(寶馬)가 사방으로 내달리며 위력으로 악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것과 같이, 생사의 큰바다를 건너 다니며 사마(四魔)로부터 항복을 받는 큰 위력과 정진력(精進力)을 나타내며, 또한 무명(無明)의 무거운 업장(業障)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합니다. 후대의 민간신앙에서는 말이나 소 등 가축의 무병(無病)·식재(息災)·안전(安全) 등을 비는 뜻에서 길가의 돌부처에 이 마두관음을 새기기도 하였습니다. 주로 축생(畜生)들을 교화하여 이롭게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의 형상이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에 세워진 아소카왕의 석주(石柱)에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도 말(馬)의 의미를 익히 짐작할 수 있으며, 아소카왕을 일러 불교의 전륜성왕이라고 하는 점에서도 경전상의 내용과 같이 모두 말과 큰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마두관음은 밀교의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 가운데 관음원(觀音院)의 제1존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아주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분노형(忿怒形)이라 하는데, 화가 나서 분노에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자비심(大慈悲心)을 더욱 발현하기 위해 손톱만큼의 번뇌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도 수행하지 않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눈을 부릅뜬 분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무량수여래의 분노신(忿怒身)으로서 화난 모습을 한 유일한 관음보살이 이 마두관음입니다.‘분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마두관음을 밀교에서 달리 부르는 명호(名號)가 있는데,‘신질금강(迅疾金剛)’이라 합니다.‘빨리 낫게 하는 금강보살’이란 뜻인데, 중생들을 속히 구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중생들의 고통과 아픔을 빨리 낫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마두관음의 존상(尊像)을 한번 살펴볼까요. 마두관음의 존형(尊形)은 적색신(赤色身)에 삼면이비(三面二臂-세 개의 얼굴과 두 개의 팔) 또는 팔비(八臂-여덟개의 팔)를 하고 있고, 삼면(三面)의 얼굴에는 각각 3개의 눈이 있으며, 손은 마두인(馬頭印)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마두관음을 조각하거나 그림으로 조형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마두관음상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음호에서 불공견삭관음보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삼면팔비(三面八臂)의 마두관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