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종과 밀교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심층밀교는 법경 정사(밀교연구소 소장/법천사 주교)가 글을 연재합니다.

(문의 khbbud@chongji.or.kr ☎010-5419-0378)

실천서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10-08 17:57 조회7,125회

본문

<실천서원 (實踐誓願)>

   총지종의 ‘불사의궤’ 가운데 맨 처음 행하는 것이 실천서원입니다. 이 실천서원은 곧 불제자로서 본분을 다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菩薩道) 정신을 발휘하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하고 성불을 위하여 진언염송에 전심전력하겠다는 다짐이자 대서원이며, 부처님께 드리는 실천약속이며 맹서입니다. 실천서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욕(忍辱)과 하심(下心)으로 진에심(瞋?心)과 원망심(怨望心)을 없애고,
 유화선순(柔和善順)과 자비지혜(慈悲智慧)로써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과 오세대 제도(五世帶濟度)에
용맹정진(勇猛精進)하겠습니다.」
 
  이 실천서원을 독송할 때는 금강합장을 하고서 일심으로 외웁니다. 먼저 집공 스승님이 한 구절 선창(先唱)하면 동참대중이 다함께 따라서 외웁니다. 실천서원을 외울 때는 게송의 내용대로 실천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천서원에는 불교수행의 기본과 모든 수행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수행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인욕과 하심의 맹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욕과 하심은 수행자가 지녀야 할 기본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욕하고 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떠한 수행도 원만하게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수행에 큰 장애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 차 삼독심(三毒心)에 깊이 빠져 진정한 수행을 해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욕(忍辱)은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이라도 굳건히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요, 하심(下心)하는 마음이 곧 인욕입니다. 인욕과 하심은 자신의 마음을 조복하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낮추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에게 하심과 인욕은 자신의 마음 그릇을 키워나가는 법기(法器)가 됩니다.

 『대지도론』에 이르기를,「인욕으로 투구를 삼고, 정진으로 갑옷을 삼으며, 계행으로 큰 말을 삼고, 선정으로 활을 삼으며, 지혜로써 화살을 삼아 밖으로는 마군을 쳐부수고 안으로는 번뇌의 도적을 멸하시나니, 이를 부처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수행자는 인욕과 하심으로 어떠한 모욕이나 박해를 인내하고 자산 마음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분심(忿心)과 원망심, 진에심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더나아가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에서 스스로 이겨내고 항상 마음을 안정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첫째도 인욕과 하심이요, 둘째도 인욕과 하심을 밑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욕과 하심만으로 보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적극적인 대승보살행이 가미되어야 합니다. 그 대승보살행이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입니다.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입니다. 자리이타는 곧 대승보살행입니다. 대자비(大慈悲)와 지혜(智慧)로써 화도중생(化度衆生)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실천서원에 담겨 있는 본뜻이자 맹서인 것입니다. 총지종은 이러한 실천서원을 구체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방편(方便)을 제시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오세대 제도(五世帶 濟度)입니다.
  오세대 제도(五世帶 濟度)란 다섯 가구를 교화하여 불문(佛門)에 들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오세대 제도는 총지종의 종조(宗祖)이신 원정 대종사께서 석존의 오비구(五比丘) 제도에서 착안을 하여 제정하신 화도방편(化度方便)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를 제도하신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석존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뒤에 바라니시의 녹야원으로 가시어 아약(阿若)?교진여(?陳如) 등의 다섯 비구[五比丘]를 교화하게 되었는데, 다섯 비구는 멀리 석존이 오는 것을 보고 ‘청정한 행에서 퇴전한 사문’ 또는 ‘도심(道心)에서 타락한 행자(行者)’라고 경시하고 서로 약속하기를 ‘불타에게 공경 존중하는 태도를 표시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석존이 가까이오자 그들은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함께 일어나서 인사하고 혹은 자리를 펴 드리고 혹은 의발(衣鉢)을 드리며 머리를 발에 닿도록 조아리고 가르침을 간청했다. 석존은 그들을 위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중요한 도(道)로써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자 이것을 듣고서 아약(阿若)?교진여(?陳如)가 최초로 번뇌를 단제(斷除)하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고 다른 사람도 차례로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를 완전히 증득하게 되었다」
 
 고 하였는데, 이것이 석존의 초전법륜(初轉法輪)이자 최초의 하화제도(下化濟度)라고 하시면서 총지종의 종도는 바로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오비구를 제도한 정신을 계승하여 중생제도에 힘쓸 것을 역설하신 것입니다.

  실천서원은 하심(下心)하고 인욕(忍辱)하는 것은 물론이요 더 나아가서 자비(慈悲) ? 지혜(智慧)로써 깨달음을 얻고 일체 중생제도에 용맹 정진하겠다는 다짐이자 대서원인 것입니다.

  실천서원은 자신의 수행단계에서 점차 대중을 위한 수행으로 확장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천서원은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다운 수행이자 불교의 진정한 회향(廻向)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실천서원의 본의(本意)는 바로 실천에 있습니다. 입으로만 외우는 서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실천서원’의 내용대로 자신이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는 것, 즉 발심(發心)이 수행의 출발이요, 참다운 불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마음을 내는 그 자리가 곧 부처의 자리입니다.’(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그 마음을 내는 자리가 곧 실천서원입니다. 그러므로 실천서원은 모든 수행의 시작이자 실천의 근본인 것입니다.

  법회시간때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읊조려 왔다면, 오늘은 ‘실천서원’의 의미를 곱씹으며 마음 가득히 새롭게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수행이란 바로 이와 같이 날마다 새롭게 느끼며 깊고 넓게 깨쳐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날이 좋은 날이 되시기를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