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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드라마 | 서울의 달-가난하지만 휴머니즘이 있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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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1-07 17:12 조회2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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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휴머니즘이 있어 아름답다


<서울의 달>

 

<서울의 달>을 쓴 김운경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울 뚝배기> <한지붕 세가족> <옥이 이모> <> < 파랑새는 있다> <짝패> <유나의 거리> 등에서 그는 한국서민의 애환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드라마들이 변호사, 의사, 실장님, 왕 등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면 그는 거지와 삼류 춤선생, 소매치기 전과범, 창녀, 차력사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얘기라고 하여 드라마가 어둡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와 공기 속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데 그 삶이 성공한 사람의 삶 못지않게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여겨졌습니다. 패배한 사람들에 대해 예기하면서 전혀 불편하지 않는 것은 드라마에 휴머니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달동네 단칸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배고픈 이웃에게 따뜻한 밥을 권하고 언제 받을 지도 모르는데 연탄을 빌려주고, 차비를 빌려주고, 심지어 옷까지 빌려 입었습니다.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모습에는 정이 있고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풍요로웠습니다.

1994MBC에서 방영했던 <서울의 달>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 “지금은 왜 이런 드라마가 나오지 않는가?”입니다. 25여년이 지났지만 사람들 마음속엔 여전히 가장 인상 깊은 드라마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서민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던 드라마는 당시 평균 시청률 40프로를 유지면서 대중성뿐만 아니라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습니다.

드라마는 시골 출신의 두 청년이 서울에 올라와서 고군분투하며 자리를 잡거나 퇴출되거나 하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해가던 고속성장 시절 시골 출신의 청년이 이런 사회변화를 어떻게 따라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인데 다소 심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김운경 작가 특유의 유머와 사실적 묘사로 재미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소시민의 삶을 김운경 작가처럼 리얼하면서도 정감 있게 보여주는 작가는 없을 것입니다. 각박한 삶이 시청자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을 정도로 가난에 대해 초연한 사람처럼 그것을 또한 유머로 재생산해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김홍식(한석규)과 박춘섭(최민식)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홍식은 일확천금을 노렸습니다. 쉽게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습니다. 돈 많은 여자를 사겨 인생을 한 판 뒤집고 싶어 하는 인물로 고향친구 춘섭을 취업시켜주겠다고 올라오게 하고는 돈 5백만원을 가로채서 사채 빚을 갚고 중고차도 한 대 살 정도로 도덕성이 부재한 인물입니다. 극단의 이기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반면에 춘섭은 그런 홍식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춘섭은 늘 입버릇처럼 홍식에 대해서 정신상태 자체가 틀려먹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홍식이 베짱이 같은 인물이라면 춘섭은 개미 같은 인물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화에서처럼 개미 춘섭은 나름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고 서울살이에 정착하는데 반해 한탕주의를 노리던 홍식은 결국 모든 걸 잃고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드라마에는 홍식과 춘섭처럼 두 부류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문간방에 사는 상국네가 춘섭과 같은 사람들로, 상국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상국 엄마는 파출부로 일하면서 부지런히 돈을 모아 나중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달동네를 떠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고 부부간에도 정이 좋은 이들 부부는 소시민 삶의 가장 바람직한 모델입니다. 나중에 춘섭이 바로 상국 아버지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홍식은 달동네 단칸방 월세조차도 제때 못 내는 박선생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드라마에는 극단적인 두 부류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크고 화려한 삶을 꿈꾸면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목적에 합당하다면 그것이라도 동원해서 목적을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양극단의 인물들을 통해 서사의 재미를 보여주면서도 소시민의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보여주었고, 한편으로 집 주인과 셋집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최근 이슈가 된 갑과 을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달>에서 보여준 가난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고 연탄이 없어 남의 연탄을 훔치기도 하고 차비를 빌리기도 하지만 가난이 가난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이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탁을 빌리고 차비를 빌리고, 밥이라도 먹으라고 하는 이웃이 있기 때문에 결코 가난이 가난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는 휴머니즘이 있었습니다.

 

휴머니즘을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자비심일 것입니다. <서울의 달>에서 김운경 작가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자비심을 발견했습니다. 문간방에 세 들어 살면서도 더 가난한 사람에게 아랫목을 내줄 마음의 여유쯤은 있고, 친구 돈을 가로채는 악당이지만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진심을 보여주고, 자신을 속인 친구지만 오죽하면 저러랴, 하며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은근히 집을 갖고 유세를 하는 집주인조차도 배고픈 사람에게 아침을 대접할 정도의 자비심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는 가난하지만 가난이 갖고 있는 부정적 기운 보다 오히려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서울의 달>은 이렇게 사람들 마음속에서 따뜻한 자비심을 끄집어 내 보여주었던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자유기고가 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