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정성준교수의 후기밀교 | 밀교도량과 신변: 생기차제 중 수유가 Anu-yoga(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1-15 14:54 조회1,258회

본문

밀교도량과 신변: 생기차제 중 수유가 Anu-yoga(1)

 

 

한국불교의 근황을 살펴보면 수륙재를 중심으로 영산재, 팔관재 등 불교행사가 자주 열리고, 밀교도량의 개설이 종단과 지자체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한국사를 살펴보면 국가의 재난을 마주할 때마다 밀교도량의 개설을 통해 국난극복의 의지를 모으고, 왕실과 백성이 소통과 결집의 기회를 가졌었다. 조선시대 불교가 억압 받을 때도 수륙재, 영산재 등의 도량은 여전히 개설되었고 초기 왕실을 주축으로 개설되었던 도량은 점차 민간주도로 확대 되었다. 중국의 경우 청조에도 수륙재 도량은 규모가 커서 운영자금을 국가가 관리한 기록도 있다. 밀교도량의 규모 확대는 밀교도량이 지닌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수륙재나 영산재 등의 밀교도량은 붓다와 중생계가 만나 화평한 인간세상을 기대하고, 망자와 생자가 만나 해원과 내세의 안녕을 축원하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만나 불만과 바램을 전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밀교도량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은 일제시대에도 여전하여 민중의 결집을 두려워 한 일제는 밀교도량을 폐지하였으며 도량을 이끄는 범패승들을 탄압하였다. 한국의 탈춤에서 보이는 것으로 민중이 권력자를 향해 퍼붓는 욕찌거리는 과거 밀교도량의 흔적이며 닷집 태우기는 도량을 마친 후 바램을 태워 부처께 올리는 호마의식이었다. 이와 동일한 호마의식은 티벳에 여전히 전해진다.

밀교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밀교도량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밀교의 위상제고에 기대를 갖게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른 것 같다. 현재 수륙재나 영산재을 훌륭히 보존하고 발굴해 온 스님들이 많지만 그것을 밀교도량이라고 명확히 정의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이들 도량에 보이는 진언과 수인, 밀교의 상징적 복색과 장엄에 대해 <대일경><금강정경>과 초기경궤의 밀교의식을 통하지 않고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가부재는 오늘 날 대부분의 밀교도량을 영가천도나 지신을 비롯한 토속신을 달래는 무속정도로 간주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밀교도량에 잠재된 밀교의 세계관은 <대일경>에서 보이듯 대일여래가 인간세계의 현실에 신변을 나투는 것이다. 대일여래가 쓴 오불의 보관이나 범패에서 보이는 오불과 오색의 복색은 대일여래로부터 불공성취여래에 이르는 신변의 단계적 과정을 상징화한다. 밀교도량에 소청하는 불보살들은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신변을 개시하는 현실의 성중들이다. 때문에 밀교도량을 통해 불보살과 유정이 만나고 생자와 사자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생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불교로부터 대승불교 후기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조직된 밀교의 상징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교에 치우친 불교사의 공부로 밀교도량을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일여래가 보이는 일체지지의 신변은 후기밀교의 생기차제에서 수행체계의 단계로 조직되었다. 생기차제 가운데 수유가(隨瑜伽)와 심심유가(甚深瑜伽)는 각각 수용신과 변화신을 수습하기 위한 수행이다. 52위의 대승보살도 가운데 수유가는 등각(等覺), 심심유가는 묘각(妙覺)의 수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다. 먼저 수유가에서 수행자는 자신의 중유(中有), 또는 중음신에 존재하는 틱레, (vayu), 풍맥(風脈)을 인식해야 한다. 중유는 육체가 아닌 의식으로 이루어진 환영이다. 그러나 유정으로서 자아와 생명체로서 인식과 인식경계가 존재한다. 중유는 의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욕계와 같은 물질세계의 인식환경과 다르다. 때문에 인식경계가 보이는 환영을 사실과 구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관상을 통한 의식만을 조절하지만 나중에는 실제 중유를 나투어 수행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이것은 구경차제 가운데 환신차제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