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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드라마 | <발리에서 생긴 일> 하나를 채우면 둘을 원하는 것이 욕망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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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1-02 17:10 조회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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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채우면 둘을 원하는 것이 욕망의 속성

<발리에서 생긴 일>

 

드라마 매니아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되는 드라마가 <발리에서 생긴 일>입니다. 2004년에 방송된 드라마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몰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드는 생각은,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왜 이제 보게 됐을까, 입니다. 굉장히 잘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잘 만든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움이 있어야 하는데, <발리에서 생긴 일>은 기존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대부분 드라마가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을 내세워 신데렐라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사회 밑바닥에 속하는 여주인공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또한 소유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인물들로 여주인공을 두고 서로를 질투하는 캐릭터였습니다. 드라마는 이들의 욕망과 파멸을 다루었습니다. 영화제를 노리는 영화에서나 다룰 법한 주제인데 드라마는 트랜디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이 주제를 잘 풀어나갔습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수정(하지원)은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대놓고 돈을 밝혔습니다. 재민(조인성)이 재벌 2세 라는 걸 알게 되자 그를 통해 팔자 한 번 고쳐볼까, 하고 재민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물론 인욱(소지섭)이라는 옆 방 사는 남자에게 더 마음이 있었지만 수정에겐 사랑 보다는 돈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재벌 2세 재민이 약혼자가 있는 남자지만 상관 않았습니다. 자신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를 찾아가 돈을 빌리고, 그가 마련해준 일자리에서 일하고, 나중에는 그가 마련해준 오피스텔로 들어가 살기까지 합니다.

 

멜로 주인공이 되기에 그녀는 너무 많이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다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도 가난하지만 수정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대체로 사랑을 택하고 자존심을 선택했는데 수정은 자존심도 버리고 사랑도 버리고 오직 돈을 쫓아갔습니다. 수정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여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주고자 하는 데 있지 않고 현실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했을 때 수정의 삶은 너무나 치열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오빠와 함께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아원을 나와 오빠와 자립해서 살게 됐을 때도 오빠는 수정에게 폐만 끼치는 존재였습니다. 전세금은 오빠의 합의금으로 날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오빠는 사채를 갚지 못해 동생을 술집에 팔아넘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수정은 오빠 때문에 호스티스 생활도 했고, 친구 따라 노래방 도우미도 하는 등 사회 밑바닥을 제대로 살았습니다.

 

산다는 것이 전쟁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발리에서 악착같이 일해 1천 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는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 돈을 갖고 도망가는 바람에 그녀는 다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수정은 한겨울에 코트도 없이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샌들을 신고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간신히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그 친구도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데, 어떤 때는 쌀도 떨어졌습니다. 가난한 친구 집에 얹혀사는 수정에게 가난이 덕지덕지 내려앉아있는 것입니다. 가난은 의식주와 관련된 것이기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이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수정에게는 이것을 채워가는 것이 가장 시급했습니다.

 

그런데 재민이 오피스텔 키를 주고,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사라고 골드 카드까지 주었습니다. 산동네 허름한 단칸방에서 살던 수정은 번듯한 아파트에 살게 됐고 또 재민이 사준 옷과 구두, 핸드백을 소유하게 됐으며, 오빠에게 용돈까지 건네줄 수 있게 됐는데, 이제야 경제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즉 의식주의 기본 욕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수정은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평생 자신을 구속하던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마음은 괴롭기만 했습니다. 이유는, 낮은 단계의 욕망이 충족되자 다른 욕망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수정은 재민이라는 재벌 2세와 인욱이라는 옆 방 남자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마음을 주지 않은 채 이리저리 옮겨 다녔는데 재민의 집에 와있으니 인욱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모든 게 채워진 상황에서 인욱이라는 결여감이 생겨났고, 이 결여감은 다른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커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채우지 못한 현실은 하나도 의미가 없고 괴롭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정이 인욱을 사랑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수정은 인욱과 함께 발리로 떠났습니다. 그때 이들은 최고급 호텔에 묵었습니다. 인욱이 회사 돈을 횡령해서 수정과 함께 발리로 도망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도 수정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인욱도 있고, 불법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많은 돈도 있고, 이전에 그가 바랐던 모든 것이 갖춰졌지만 수정의 마음은 만족을 몰랐습니다. 다른 욕망이 또다시 생겨난 것입니다. 이번에는 재민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났습니다. 재민과 함께 있을 때는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재민이 옆에 없자 이번에는 재민이 자신의 전부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재민이 없는 현재가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고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했던 것입니다.

 

욕망을 쫓으며 살아온 수정의 삶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채우면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고, 결코 결핍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정의 마지막은 파멸이었습니다. 질투에 이성을 잃은 재민이 쏜 총에 죽으면서 수정의 욕망은 드디어 포기를 배우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욕망의 속성을 매우 밀도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욕망은 채운다고 하여 만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를 채우면 둘을 원하는 것이 욕망의 속성이고, 끊임없이 욕망에게 끌려 다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하고 부처님께서는 인간계를 욕계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욕망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나무를 아무리 잘라내어도 뿌리가 견고하면 그 나무는 다시 자라나는 것처럼 욕망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괴로움은 자꾸자꾸 생기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욕망은 채우기 보다는 없애는 것이 행복을 위해서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수정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계속 욕망을 채우려고만 했고, 결국 그 결과는 파멸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