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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열반과 밀교의 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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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0-04 16:13 조회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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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과 밀교의 호마

 

열반은 번뇌와 괴로움이 소멸된 적정(寂靜)의 상태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열반에 있다. 열반은 생사의 괴로움이 있게 된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그 현실을 자각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는 교리에 대한 이해(理解)라고 할 수 있다.

열반에 이르는 첫 번째의 길은 번뇌와 괴로움, 고통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들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번뇌의 근본 원인이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고 설하셨다. 무명은 지혜가 없다는 것으로,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에서도 무명 속에 살아가는 중생의 삶은 죽을 때까지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무명으로 인하여 행이 있고 내지 노(老死憂悲惱苦)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십이연기설에서 익히 알 수 있듯이 무명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를 가리킨다. 무지(無知)에서 어리석음이 있게 되고,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생사 가운데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지로 인하여 번뇌와 괴로움을 겪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생사의 괴로움은 무지(無知)를 타파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지는 어떻게 타파할 수 있는가? 무지의 타파는 진리에 대한 이해와 자각, 수행과 실천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교설을 잘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불교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불교에서 공부와 수행 실천의 목표는 무명의 타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명의 타파가 곧 열반인 것이다. 그 길은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불교에서는 교리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실천수행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교리는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론에 해당되는 교설을 설하실 때마다 상응하는 실천적 교설을 함께 설하셨던 것이다.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無明)과 갈애(渴愛)

 

부처님께서는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 무명뿐만 아니라 갈애(渴愛)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열반에 이르는 두 번째의 길은 갈애(渴愛)를 여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갈애는 애욕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다. 즉 애욕에 대한 집착이다. 이를 애착이라고 한다. 갈애란 어떤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이다. 이를테면 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으로 인한 집착이 여기에 해당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갈애(渴愛)를 번뇌 가운데 가장 크고 깊으며, 견디기 힘든 욕망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수행에 커다란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 무명(無明)은 지혜를 가로막는 장애요, 갈애는 중생의 마음을 불선(不善)과 악()으로 물들게 하고 집착케 하는 번뇌의 덩어리라고 설하셨다. 무명과 갈애가 번뇌와 괴로움의 근본원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환언하면, 무지(無知)와 갈애(渴愛)의 타파는 생사 가운데 일어나는 번뇌와 괴로움, 고통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소멸한 상태가 바로 열반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오로지 진리와 일체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가능하다.

그러한 성찰은 곧 연기(緣起)의 이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연기로써 존재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체 존재의 연기성(緣起性)을 자각하는 것이다. 연기성은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일체 존재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무상(無常)의 또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무상(無常)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연기를 이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괴로움이 소멸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일체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는 교설에 이어서 괴로움의 소멸이 곧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설하셨다. 괴로움을 없애는 길은 바로 무상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체가 무상하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교설이다. 무상의 진리를 깊이 인식할 때 고통과 괴로움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반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오직 진리와 일체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열반적정을 이룰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열반에 이르는 실천교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편으로 설해져 왔다.

 

열반에 이르는 밀교의 수행방편

 

밀교에서도 열반에 이르는 수행방편은 여러 가지로 전개되어 왔다. 지계(持戒)와 삼밀수행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법(作法)들이 열반에 이르는 방편으로 시설(施設)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법으로서 호마법(護摩法)을 들 수 있다. 번뇌망상과 일체의 괴로움을 여의는 수행이 열반의 길이라 보았을 때 밀교의 호마는 열반에 이르는 중요한 방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호마는 산스크리트어로 Homa라고 하며, 소공양(燒供養)의 뜻이다. ‘공양물을 태운다’ ‘태워서 공양한다는 의미다. 이 호마는 원래 인도 바라문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나무로 불을 지피고 그 불 속에 공양물(供養物)을 던져 소원하는 바를 비는 종교 의례였다. 이 호마가 불교에 수용되면서 진리의 불로 번뇌의 나무를 태운다는 의미로 승화되었다. 즉 혜화(慧火)를 가지고 번뇌의 장작을 태운다는 뜻으로 변화한 것이다. 외형적인 의례에서 벗어나 중의(重意)의 수행방편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호마를 행할 때 관념으로써 본존(本尊)과 화로(火爐), 행자(行者)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행자 자신의 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