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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혜의 눈 | “상구보리 하화중생”,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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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0-04 16:11 조회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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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보리 하화중생”,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사이에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대립 구도로 삼지 않아야

지혜 밝히는 일은 안락한 세상 만들어 가는 첫걸음

 

 

미세먼지를 주제로 한 어느 강연에서 발표자는 각 개인이 마스크를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가 많은 도로에 특히 미세먼지가 많은데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어린이와 노약자는 더 취약한데 마스크를 씌우지 않은 채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한다.

생명이 걸린 문제를 개인 차원의 대책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우리 각자가 고통을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사회나 국가, 국제사회 차원에서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상호의존 하는 세상 이치와 달리 우리 인간이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데 큰 원인이 있다는 지적에 자괴감도 느껴진다.

대승보살도의 핵심 모토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다. 바른 식견을 가지고 모두를 구원하자는 큰 이상이다. 전 인류가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한다면 이뤄내지 못할 건 없겠지만 개인마다 집단마다 식견과 가치관에 차이가 있어 녹녹치 않다.

원자력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위 발표자는 환경문제와 관련해 분명히 가야할 길은 있지만 쉽사리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를 감안할 때 에너지원으로 현재로서는 원자력이 가장 깨끗한데 논란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누군가 공동체를 위한답시고 나서지만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할 때는 혼란만 가중시킨다. 그래서 때로는 소아적인 생각에 유혹을 받아 자기자신부터 지혜를 기르고 힘을 키워보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칫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개인주의나 독선의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때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머물기도 한다. 자기 의견을 제대로 개진하지도 못하고 남의 의견도 쉽사리 부정하거나 동조하지 못하는 회의주의자가 된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점에서 자체 모순을 가진 철학이지만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채 주위와 거리를 둔다.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단정을 내리기보다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려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런 회의는 탐구의 정신과 통할 때 제힘을 발휘한다. 1000번을 실패해도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로 그 원인을 궁구한다면 마침내 1001번째 실험에서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문제 해결의 첫걸음인 지혜를 밝혀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작은 지혜들이 쌓이면 큰 지혜를 이루기 때문이다. 불교가 사람들에게 신구의 삼업(三業)을 청정히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것이 지혜를 드러내는데 필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깜깜한 밤에는 등불을 밝혀야 하듯 밝은 안목이 필수적이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 문제로 돌아가면, 사회 구원을 위해서는 개인 구원이 필요하고 개인 구원을 위해서는 사회 구원이 요청된다. 닭과 계란의 문제일 수 있지만 각 개인 입장에서는 개인 입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가시로 뒤덮인 세상이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는 가시를 제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각자가 가죽신을 신는 일이다. 잘 보면 이 둘은 배치되는 일이 아니다. 꼭 순서가 있지도 않다. 가죽신을 신고 활동에 장애가 줄어들수록 가시를 뽑아내는 일도 더 적극 할 수 있으니 상보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명(無明)을 극복해 나갈수록 세상은 안락해질 것이며, 그럴수록 자기 한계를 넘어 무아(無我)를 실천해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우리 모두 마스크도 쓰고 청정기도 돌리면서 한편으로 에너지도 절약하고 청정한 에너지도 개발해나감으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세상의 안락에도 기여하는 발걸음들을 디뎌 나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