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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법장 | 끝없는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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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10-04 16:10 조회1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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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참회

 

보살님들 모두 다 힘들지 않은 일만 하면서 지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회사에 다니면 회사에 다니는 나름의 노고가 있고, 장사를 하면 장사에서 오는 또 다른 고통이 있고, 주부로 지낸다면 집안일에서 오는 그만의 힘든 점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어떤 일을 하든 늘 불평불만 투성이었습니다. 그만두고 싶다, 때려 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속으로만 하는 것도 모자라 가족이나 주변의 친한 사람을 붙들고, 그만두어야겠다, 더 이상 못해먹겠다, 라고 성토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을 듣고 있던 저의 주변인들도 저 못지않게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불만이 많았으므로, 저는 그 힘든 일을 곧장 그만두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그만두지도 못하면서, 그만둘 용기도 없으면서 주구장창 불평만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행여나 그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때에는,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업을 많이 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어 놓은 두터운 업들을 모두 참회할 생각을 하면 앞이 아득해지곤 했습니다. 특히나 남편과 자식이 나의 속을 썩이고 힘들게 할 때면 그 모든 것을 고통이라고 여겨서 더 많은 업을 지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코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습니다. 어떤 일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가령 질병을 얻었다고 해도, 그 질병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냥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다만, 그 일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즉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때로는 그런 대로 견딜만한 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은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 그리고 물질의 세계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계속 화를 내고 있지는 않나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 살 맛이 나지 않는다, 운이 없다, 박복하다, 이런 식으로 신경질을 내고 하소연을 하며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이고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세계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타인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는 그들에게 속해있는 것이지 나의 몫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관할이 아닌 세계를 넘어다보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흉을 보고 업을 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에는 모든 정성을 다해서 키웁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이 장성하고 났을 때, 자식이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굉장히 섭섭해 합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역시 따지고 보면 타인의 세계에 불과합니다. 주고 안 주고, 해주고 안 해주고는 그 아이의 몫이지 부모인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도, 형제간의 사이도, 부부간의 사이도 모두 타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상황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몫을 파악하여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줄 모르고 애먼 남의 탓을 하며 업을 짓고, 그 업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보고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이것은 공덕을 짓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전환하면 모든 일을 복 짓는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행여나 상대가 불쾌한 언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모습을 보여주니 감사하구나, 나도 저런 허물이 있으면 버려야겠구나,’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옛날, 일본에 유명한 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은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출가를 했습니다. 산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중 마을에서 49재 불공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절에서는 스님들끼리 마을의 49재에 누구를 보내야 할지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이 어린 스님이 낙점되었습니다. 어린 스님이 마을에 내려가서 그 집에 가보니 미망인이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답니다. 염불을 하는데, 그 염불을 코로 하는지 입으로 하는지 모를 정도로 자꾸만 미망인의 그 콧물에게로 신경이 쏠렸습니다. 미망인이 콧물을 줄줄줄 흘리면서 밥을 하는 통에 밥솥으로 콧물이 계속 떨어졌습니다.

이 염불이 끝난 다음에 내가 저 밥을 먹게 되면 어떻게 하지?’

어린 스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에 미망인의 어린 자식 하나가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어찌나 지독하게 우는지 울면서 오줌을 듬뿍 싸서 방의 반나마 오줌바다가 되었습니다. 미망인은 아이를 달랜다는 명목으로 주걱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라며 툭 던져주었습니다. 기다란 주걱은 오줌 바다 위에 철퍼덕 하고 떨어졌습니다.

설마 저 오줌 범벅인 주걱으로 밥을 푸거나 하진 않겠지?’

스님은 또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마침 미망인이 스님을 불렀습니다.

스님, 시장하시죠?”

그러고는 아이의 오줌 바다에 빠져있던 주걱을 들고 가서 씻지도 않고는 밥솥의 밥을 휘휘 저으면서 식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 스님은 배탈이 났다는 둥, 몸이 안 좋다는 둥 어찌 저찌 겨우 핑계를 대어 그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염불을 위해 미망인의 집을 찾았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감기가 말끔히 나았는지, 미망인은 콧물도 흘리지 않았고 전에 그토록 울어 제끼던 아이도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을 부렸습니다.

아 오늘은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갈 수 있겠구나.’

어린 스님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신나게 염불을 하였습니다. 염불이 끝날 무렵 미망인이 스님을 불렀습니다.

아유, 스님 목이 마르시죠?”

스님은 미망인이 건네는 단술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한 그릇 더 드릴까요?”

미망인이 다시 건네준 단술 한 그릇을 마저 다 마셨습니다. 그런 스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망인이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스님이 식사를 안 하고 가셔가지고, 그 남은 밥으로 식혜를 만들어 보았어요.”

큰 스님이 된 다음, 이 스님은 법단에 올라가 설법을 할 때마다 제자와 신자들에게 당시의 일화를 소개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인연을 피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노력을 거듭해서 피한다고 한들, 그 인연은 길모퉁이에서라도 또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는 인연을 만났다 싶으면 그 즉시 해결을 보고, 끝장을 보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경험해야 할 때에는 경험을 해보고 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인연이라든가 사건, 사고는 항상 나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임해야합니다. 일이 다가오면 환영을 잘 하고, 일을 끝낼 때에는 복을 짓는 방식으로 끝내며 수행을 해야 합니다. 나의 바깥에 신경을 팔리기보다는, 언제나 나의 내면에 집중을 해서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해야 합니다. 저녁 정송을 할 시에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고, 혹시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며 부처님께 참회하고 자신을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보살님 모두 49일간 자신을 돌아보는 불공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