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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혜의 눈 | 향상일로(向上一路), 창조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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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9-04 11:00 조회1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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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안심입명처로서 자귀의 법귀의가 대안

창조적으로 생각 드러내가는 향상일로 걸을 뿐

 

역대 최고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덧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며 문득 인생과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일깨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세월 속에 묻혀버리리는 인생사이기에 아쉬운 감정과 속시원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이런 저런 방황을 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는 소식에는 안타까운 마음 그지 없다.

파스칼이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지만 생각을 할 줄 안다는데서 인류 문명은 다른 생명체를 압도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생각 하나, 마음 하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곤란을 겪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 마음 수련이나 명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생각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철학의 빈곤이라는 단어가 거론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를 내세운 마르크스가 무정부주의자인 프루동을 철학이 빈곤하다고 비판했다지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자신은 옳고 다른 이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자기는 늘 옳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마르크스 자신 또한 철학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

생각을 좁고 얕고 가깝게만 하면 그런 정도의 속 좁은 주체가 형성되며, 연륜과 수행을 더하여 생각 능력이 커질수록 인격도 깊어진다. 따라서 자신과 세계가 어떠한지 근본적인 물음을 가질 때 바람직한 주체 형성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 중에 자신에 대한 태도를 놓고 생각해 보면 현실 속의 인간은 대개 세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지나치게 주체에 집착하던지, 반대로 주체성 상실에 가깝던지, 아니면 그 사이에서 적당하게 타협하고 살던지.

첫 번째는 생각하는 자아상에 매여 주체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고집에 빠지는 경우이다. 또 두 번째는 주체성을 외부 존재에 맡기거나 외계대상에 대한 탐욕에 빠져 주체성을 아예 상실하는 경우이다. 이 둘은 극단의 양변에 위치해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주위 상황이나 여론에 따라 적당히 입장을 바꾸는 절충을 뜻한다.

위의 어떤 경우도 완벽한 자존감 내지는 행복감을 얻는 것과는 멀다. 생각하는 주체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자기 생각이 옳다는 관념을 자기와 동일시하고 그와 배치되는 것들을 철저히 자신과 구별 짓거나 배격한다. 그럴 때 타인과 조화를 이루거나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려워진다.

또 주체를 상실할 경우는 외부 존재에 종속된다. 예컨대 절대신이 하라는 대로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고자 할 경우 그야말로 착한 종이 되고, 외계 대상에 탐닉하여 감각적 욕망에 빠져 살면 그러한 욕망에 종속된다. 그리고 적당히 타협할 경우는 마음의 부조화로 이도저도 아닌 채 확신을 갖지 못하고 내면 갈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생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은 어디에 해당할까. 주체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하는 점에서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자기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진 셈이므로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체성의 문제는 생각하는 존재로서 첫 단추를 제대로 꿰자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때 불교가 과연 안심입명처가 될 수 있을까 돌아본다면 어떠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 즉 자신에게 의존하고 진리에 의존하는 일이 그 하나가 아닐까 싶다.

진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주인공으로서 우리 스스로는 어떤 생각에도 매이지 않고자 한다. 그렇다고 생각 없음 따위에도 매이지 않고자 한다. 다만 생각을 창조적으로 자유자재로 드러내 나가는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걸을 뿐이다.


김봉래(불교방송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