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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준교수의 후기밀교 | 6지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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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8-07-20 11:35 조회1,4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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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지유가

 

 

인도 후기밀교에는 대승불교 유가행의 흔적을 전하는 흔적들이 쉽게 보이며, 연구자들은 태장계와 금강계 양 경전의 수법을 계승한 적자로 후기밀교를 지목하고 있다. 밀교에 대해 내면적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석가모니붓다의 가르침을 면면히 계승한 나란다대학의 이름 모를 학장들에 대해 절로 경외심을 갖게 된다. 밀교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진실을 마주하는 두려움에 얼굴을 가리는 학자나 전문가들을 많이 보았다. 종교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가식의 껍질로부터 탈피해 진실을 마주하고 낡은 관념을 벗어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새롭게 변하는 세상과 쏟아지는 지식을 마주하는 것은 필자도 두려운 일이다.

4방편의 수행은 후기밀교 시대 수행체계의 확대에 따라 무상유가딴뜨라의 범주에서 해석한 장면을 쉽게 마주한다. 위슈와미뜨라는 4방편의 구극에 대해, “자성으로서 적정락을 대성취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인간이 가진 육신과 감각은 열반락의 현실이다. 사회적 가식과 도덕으로 머뭇거리면 찰나에 진실을 잃을 것이다. 다시 위슈와미뜨라는, “자성의 광명을 대락으로 수용하는 것을 대성취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인도 후기밀교의 학장들 치고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연명한 스승들은 많지 않다. 대신 많은 스승들은 교단 밖에서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다. 인도 84성취자 가운데 한분인 딜부빠가 있었다. 그는 당대에 유명한 밀교성취자였지만 그 지역의 왕은 딜부빠가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두고 조롱거리로 삼았다. 딜부빠는 왕이 지닌 종교적 타성과 관념을 알고 있었기에 피했으나 어느 날 왕은 사냥차 외유하여 딜부빠를 찾았다. 딜부빠는 자신의 처와 아들을 공중에 던지자 땅에 떨어지면서 밀교의 법구인 금강령과 금강저로 찰나에 바뀌었다. 이에 왕은 자신의 행적을 후회하며 이후 딜부빠를 깊이 존경했다.

밀교는 종교와 가정과 같은 사회적 범주로부터 육신과 감각, 심지어 생명을 다루는 존재 극변의 현실도 외면하지 않는다. 지극한 진실을 뚫고나가는 것은 오로지 정성과 강한 집중이다. 후기밀교의 6지유가는 정신적 집중과 삼매를 보이는 것이다. 6지유가에 대해 <비밀집회딴뜨라>18분에 해당하는 <속딴뜨라>에는 "집중(調集)과 선정(靜慮), 조식(調息)과 집지(執持), 억념(憶念)과 삼마지(三摩地)6지유가이다라고 하였다. 집중과 선정, 호흡과 집중, 기억과 삼매, 이러한 일련의 수행은 현교와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후기밀교의 6지유가는 현교와 다르게 미세유가와 틱렉를 익혀야 한다. 정신계로부터 육신이 존재하는 물질계를 열어가는 최후의 두 단서는 미세유가와 틱레이다.

불교수행자라면 누구나 좌탈입망하길 꿈꾼다. 연로하여 치매에 걸리거나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두렵게 생각한다. 한때 중국의 선사들은 좌탈입망하는 것이 유행하여 선사의 온전한 수행을 상징하는 증표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미세유가와 틱레는 생명의 끈과 뿌리, 줄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인연이 임박하면 그 뿌리가 치아처럼 덜렁거리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선사들도 이에 대한 공부가 없지 않으며 선사들이 <능엄경>을 연구하는 이유도 이와 유관하다. 지금도 좌탈입망한 선사들의 소식이 가끔 들리지만 이에 대해 조작의 여부나 논란이 오히려 더 번거러워 보인다. 소식이 있는 수행자라면 죽음과 질병조차도 법을 벗어나지 않으며 오롯한 법성의 광명이 항상 조요한다면 병든 노구를 보는 속인이 보는 불편 따위는 괘념치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