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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한담 | 경주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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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1-06 13:50 조회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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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밤

 

얼마 전, 천년고도 경주에 다녀왔다.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백시인들과 광개토시인들이 합동 시낭독회를 가졌다. ‘광개토는 서울과 경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58년 개띠 시인들을 주축으로 61년 소띠와 63년 토끼띠 시인 8명으로 구성된 문학모임이다. 시낭독과 문학토크 등의 문학 활동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화백의 초청으로 성사된 이번 경주행에 다들 바쁜 와중에도 흔쾌한 동의로 이루어졌다.

저수지가 뻔히 내려다보이는 라이브카페에서 각자 준비한 시 한 편씩 낭독했다. 성이 인지라 맨 처음 낭독을 했는데, 왜 지금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떨리는지. 손에 든 종이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일 년 전,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 토론에서도 떨었다. 무대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질의를 하는데 떨고 있는 내 목소리가 느껴졌다. 한 시인단체의 사무총장을 하면서 행사 사회도 많이 봤고, 강의도 많이 해봤는데 이 떨림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마음으로부터 나온다’(一切唯心造)고 했다. 무대공포증 또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외부환경에 마음이 흔들려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떨림의 한 줄기인 부끄러움과 낯가림, 어색함도 다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태풍에도 흔들림 없는 깊은 바닷속의 물이 아닌 살랑바람에도 찰랑대는 얕은 연못의 물이 내 마음인 것이다. 이론은 빠삭한데 실천할 수 없으니 참 한심한 중생이다.

카페 안에 시와 호흡과 호흡 사이의 고요가 흐르는 동안 밖이 점차 어두워졌다. ‘푸른파란’, ‘붉은하얀이 차례로 검은으로 물들어갔다. 자연은 그 자리에 그 빛깔로 서 있지만 어둠의 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내 몸은 카페에 앉아 있는데 내 시선은, 내 마음은 저수지 건너 숲속에 머물렀다. 떨림은 이미 사라져 저수지처럼 고요해졌다. 유리창에 비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 내 귀로 시 구절이 흘러들어왔다.

네 엄마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셔, 어릴 적 숙모님의 까닭 모를 말씀 이제야 알겠습니다. 신새벽 푸른 꿈속 다녀가셨고 그리하여 난마와 같은 온몸 온 마음 이토록 평온해졌음을 알겠습니다

손종수 시인이 엄마 반가사유상이라는 시를 낭독하고 있었다. 엄마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니! 마음이 지나치게 어질고 순한 사람을 둔 시인은 행복할 것이다. 그런 엄마의 부재에 시인은 불행할 것이다. 이 또한 내 마음에서 오는 것 아닌가. 엄마가 인자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사람에게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엄마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낭독이 이어졌다.

언제였는지, 생의 기로에 걸터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다리 위에 수평으로 얹고 오른손을 받쳐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여자를 보았고 그 순간 미망(迷妄)에서 깨어났습니다.”

생의 기로미망이라는 시어가 귀에 와 박혔다. 연화대 위가 아닌 생의 기로에 걸터앉은엄마의 모습, 그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미망(迷妄)에서 깨어난 시인. 다 알다시피,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틀고 현세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한 상념에 잠긴 보살불상이다. 시인은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가난한 엄마의 모습에서 반가사유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당장 한 끼 밥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생사의 기로에서 체면이나 부끄러움은 사치가 아닐까. 생각해보라. 내 앞에서 자식이 굶어 죽어간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그럼에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살았다면 그냥 부처가 아닌가. 모습은 다를지언정 마음이야 어찌 다르겠는가. 그렇게 시심(詩心)과 불심(佛心)으로 물든 경주의 밤이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