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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정사가 전하는 밀교연재 |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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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1-06 13:43 조회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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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⑨-1

 

 

정심(井心)

중생의 마음 중에 정심(井心)이란 것이 있다. 정심(井心)은 글자 그대로 우물물의 마음이다. 어찌해서 우물물의 마음인가. 그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물물의 마음이다. 이는 중생의 마음속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물물에 비유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옛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중생의 마음을 알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우물 속의 물에 비유한 것이다.

<대일경소>에서 정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정심이라 하는가? 구부려서 우물물을 잠깐 보는데, 얕고 깊은 정도를 알기 어려운 것처럼 마음의 성품도 역시 이와 같다.’

계속해서 정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들 모두가 헤아리지 못한다. 함께 머물고 같은 일을 할지라도 역시 그의 마음속은 알지 못한다. 이것이 우물물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 여러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더라도 그 속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속은 감출 수가 없는 법이다. 연기의 이치를 알게 된다면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대일경소>에서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연기의 법문과 착한 사람의 모습은 모두 드러나기에 알기 쉬우니, 이것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연기의 이치를 깨닫는다면 정심을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연기와 인과로써 선과 악은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지은 대로 받는 것이오, 지은 것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다. 구름이 해를 가린다 해도 영원히 덮을 수가 없다.

<명심보감>성심편(省心篇)에 이런 말이 있다. ‘물밑의 물고기와 하늘의 기러기는 높이 날아도 활로 쏠 수 있고 낮게 바닥으로 내려가도 낚을 수 있지만, 오직 사람의 마음은 지척 간에 있어도 그 가까운 거리의 사람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또 이런 말이 있다. ‘호랑이를 그리되 가죽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안다하더라도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알지 못한다.’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은 알 수 없다.’ 모두 사람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 우물물과 다를 바 없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악의(惡意)로 가득 찬 마음을 나타내는 말도 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꿀맛 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정심(井心)을 넘어 악심(惡心)에 가깝다. 구업(口業)의 전형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은 참다운 마음이 아니다. 겉과 속이 같지 않은 마음은 자신과 다른 이에게 바람직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모두를 병들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자신과 다른 이에게 솔직해야 한다. 수행이란 정심(井心)을 정심(正心)으로 바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