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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뽀이야기 | 심보(心褓)는 ‘마음 보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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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1-06 13:39 조회2,1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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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心褓)마음 보자기

 

심보가 고약하다.’ ‘도둑놈 심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사전적으로는 심()은 마음을 나타내며 순우리말은 마음보라 한다. ‘심보에서 는 한자에 같이 쓰는 접미어인 것 같다. 여기서는 보자기와 포대기의 의미가 있는 포대기 ()’로 표현해본다. 포대기나 보자기는 어떤 사물이나 물건을 싸고 묶는 용도로서 심보는 마음을 싸고 묶는 의미의 마음그릇이라 하고 싶다. 마음보자기는 마음을 쓰는 본바탕, 생각이 담기는 보자기일 뿐 아니라 담긴 생각에 따라 인격과 기질과 행동이 되어 나타나는 보자기이다.

능엄경에는 심보에 대해 일수사견(一水四見)’의 예화를 들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일수사견은 하나의 물(一水)이 네 가지로 보인다(四見)는 뜻이다. 예를 들면 천상계에 사는 천인(天人)들에게는 물이 맑은 유리보석으로 보이며, 세상 사람들에게는 마시고 씻는 것으로, 물고기들에게는 사는 집으로, 아귀들에게는 피고름으로 인식된다는 내용이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세상의 모든 대상들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여 진다는 뜻이다. 즉 모든 대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주관과 인식되는 객관사이에 성립되는 다양한 인연(因緣)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의 인식주관에 의하여 달리 인식되어질 뿐이다.

또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원효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서 전날 밤 맛있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후 유학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에서 더 높은 진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원효스님의 이러한 깨달음은 똑같은 물이지만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이 왜 이렇게 다를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답을 마음에서 찾았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인식의 한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사물일지라도 스스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보는 자에 의하여 다양한 각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 판단의 정당성에 대하여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한다.

현재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은 내 인식의 한계에 의하여 구속되어 있는 것이며, 나와 동일한 인식을 하고 있는 생명체는 어느 공간에도 존재할 수 없다. 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세상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인식에 대한 존중함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한다.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이다. 그리하여 팔만대장경의 수많은 경전을 한글자로 함축하면 마음 심자() 한글자로 표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마음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는 마음에 대한 탐구를 위한 종교이며, 마음공부가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의 변화를 주도하는 수행으로 자신의 행위를 수정하여 행복을 얻고자 한다. 착한 마음에서 행복이 올 수 있으며, 나아가 마음의 궁극적인 변화를 통해서 결국 중생에서 깨달음의 부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