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종보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칼럼 지혜의 눈 | 서양의 근대화와 불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0-04 15:19 조회74회

본문

서양의 근대화와 불교

 

16세기에서 18세기는 서양이 바야흐로 세계를 제패하고 본격적인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입니다. 1492년 컬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고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캘리컷에 도달한 이후 서양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에서 엄청난 재화를 약탈하게 됩니다. 이를 본원적 축적이라고 하는데 서양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하는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예전의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유럽의 아메리카 침략을 신대륙의 발견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지극히 유럽 중심적 시각이 담겨있다는 비판으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 교과서에서는 지리상의 발견 또는 신항로의 개척이라는 용어로 바뀌었습니다.

서양에 의한 신항로의 개척이후 서양은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들이 파견됩니다. 그 중에 중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중국의 지식인을 전도하기 위해 중국 사상에 대해 연구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유교 경전이 서구언어(라틴어)로 번역이 되어 서양으로 보내집니다. 그러한 번역서들은 조금씩 일반인들에게 유포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계몽사상의 가장 열렬한 사상가인 볼테르나 독일의 사상가인 볼프같은 사람들이 중국 문명의 열렬한 예찬자였습니다. 서양의 근대는 동시에 기독교적 세계관의 탈피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기독교의 영향력을 탈피하려는 사람들에게 성리학의 무신론적 세계관이 영향을 주어 이신론(理神論, Deism)이 성립하였다고 학자들이 주장합니다. 이런 흐름속에서 중국풍의 문화예술이 유럽 여러나라에 널리 유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19세기에 들어와 청나라가 아편전쟁의 패배로 몰락하는 사건을 전후로 동양에 대한 멸시로 분위기가 바뀌게 됩니다.

일단 이런 세계사적 흐름과는 별개로 성리학의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진남북조와 수당에 걸친 중국의 중세시대는 불교가 중국 사회에 주류적 사상의 위치에 올라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시기였습니다. 중국에 들어온 수많은 종교와 사상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중국 사상의 기반을 흔든 사상은 불교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불교는 중국화하여 선종(禪宗)을 탄생시켰습니다. 같은 시기 유교는 형식적 예교 내지 국가 운영의 원리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일단의 유학자들은 불교의 교리를 흡수하여 새로운 유학(신유학(新儒學), neo confucianism)을 이룩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은 성리학의 세계관으로 토대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기론은 화엄경의 이사(理事)의 개념을 빌어다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리학은 이기론을 심성론 수양론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대승불교 사상도 함께 연구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불교의 내용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성리학을 매개로하여 서구 근대사회의 사상적 배경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지요. 더구나 근대 이후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루어진 과학적 세계관은 놀랍게도 불교의 교리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나비효과는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의 판박이로 보입니다. 또한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명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명상은 불교의 선()과 공통분모가 매우 많지요.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종교의 시대는 아닙니다. 여전히 종교가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근대 이전의 중세시대만큼 절대적이지도 않고, 있다하여도 영향력은 개인의 정서적 측면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기왕의 교과서에서 다루는 세계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불교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불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문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도 현대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들을 해소 내지는 완화시키는데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된다고 많은 학자들이 학문적 근거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교적 가르침은 여전히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칼럼리스트 김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