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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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법장 | 남의 흉을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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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9-05 15:29 조회934회

본문

 남의 흉을 보지 말라

 

부처님의 본생담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6년 고행만으로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라, 과거세의 오랜 억겁의 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 삶을 살면서 선행을 하고 수행을 거듭하여 공덕을 지은 결과로서 이 현세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으로서만 한생을 사는 게 아니라 어떤 때는 이름 없는 풀벌레로도 살아봤을 것이며, 모든 생명을 관통해서 살아봤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을 보냈으며, 이런 윤회하는 삶의 행위가 모두 저장되는데 이를 불교에서 8식 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1식부터 7식까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아뢰야식에 업이 씨앗처럼 자리 잡기 때문에, 한 생명이 다하면 그동안 느끼고 받아들였던 모든 인식이 아뢰야식에 담겨 있다가 씨앗처럼 자라나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한 번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었다면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뢰야식에 저장된 많은 생각과 습과 행동이 저장되어 있어서 현재도 살아가면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주는 것도 없이 미운사람이 있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전생에 나의 경험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어느 생에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여러 인연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쓸 만한 생각보다 내다 버릴 생각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들은 과거에 대한 생각과 오지 않을 미래의 생각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이생에서 태어나서 겪는 일들 중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게 많습니다. 내 마음은 아름답고 싶은데 아름답게 태어나지 않았고, 부자로 살고 싶은데, 부자로 살지 못합니다. 자식도 내 맘 대로 따라 오지 않고, 잘 키워서 좋은 직장을 가더라도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싶지 않은데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드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말 못할 사연, 해결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걱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비슷한 고통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대 인도 설화가 있습니다. 한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매일 숲으로 가서 나무를 해서 짊어지고 돌아옵니다. 아침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나무를 지고 나릅니다. 어느 날 반복되는 이 삶이 너무 고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바닥에 나무를 내동댕이쳤습니다. 누워 하늘을 보며, 죽음의 신이 있다면 나를 데려가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늙고 병들었는데 왜 안 데리고 갑니까, 남들은 잘도 데리고 가는데 왜 나는 안 데리고 갑니까, 제가 무슨 죄입니까. 그 때 죽음의 신이 부르셨습니까.’ 하며 나타났습니다. 나무꾼은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지겨운, 괴로운, 생각이 모두 달아났습니다. 무릎을 꿇으며, “떨어트린 나무를 지는데 힘이 들어서, 도와 달라 불렀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우리 삶이 결국 다시 나무를 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반복되는 것처럼 지치고 고단해도 실제로는 죽음의 신이 나타나면 놀라는, 결국 죽는 것보다 살고 싶다는 것이 깊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이 생기면 한가지로 끝나면 되는데, 뒤따라서 숨통을 조이듯이 계속 고통이 연이어서 오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또 고통을 이겨내고 결국 살아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만나는 사람, 어려움, 고통들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하니, 남이 저지른 잘못을 흉보는데 힘쓰지 말아야합니다.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 간에 오는 순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참회를 통해 자기 업을 소멸하해야 합니다. 자신이 바뀌어야 변화가 일어나고, 습관이 바뀌면 주변 사람들도 바뀝니다. 여러 겁 동안 자신에게 저장된 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로지 참회를 통해서 자기 허물을 벗을 수 있습니다.

 

(1) 남이 저지른 잘못된 일을 흉보는데 힘쓰지 말고, 항상 자신을 반성하여 정과 부정을 알아야 한다.

(2)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허물을 먼저 참회한 다음, 뜻과 행동을 조심하여 선을 행하고 범함이 없다.

<법구경(法句經), 불교총전 476p>

 

부처님의 본생담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6년 고행만으로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라, 과거세의 오랜 억겁의 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 삶을 살면서 선행을 하고 수행을 거듭하여 공덕을 지은 결과로서 이 현세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으로서만 한생을 사는 게 아니라 어떤 때는 이름 없는 풀벌레로도 살아봤을 것이며, 모든 생명을 관통해서 살아봤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을 보냈으며, 이런 윤회하는 삶의 행위가 모두 저장되는데 이를 불교에서 8식 아뢰야식이라고 합니다.(1식부터 7식까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아뢰야식에 업이 씨앗처럼 자리 잡기 때문에, 한 생명이 다하면 그동안 느끼고 받아들였던 모든 인식이 아뢰야식에 담겨 있다가 씨앗처럼 자라나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한 번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었다면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뢰야식에 저장된 많은 생각과 습과 행동이 저장되어 있어서 현재도 살아가면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주는 것도 없이 미운사람이 있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전생에 나의 경험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어느 생에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여러 인연들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쓸 만한 생각보다 내다 버릴 생각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들은 과거에 대한 생각과 오지 않을 미래의 생각이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이생에서 태어나서 겪는 일들 중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게 많습니다. 내 마음은 아름답고 싶은데 아름답게 태어나지 않았고, 부자로 살고 싶은데, 부자로 살지 못합니다. 자식도 내 맘 대로 따라 오지 않고, 잘 키워서 좋은 직장을 가더라도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싶지 않은데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드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말 못할 사연, 해결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걱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비슷한 고통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대 인도 설화가 있습니다. 한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매일 숲으로 가서 나무를 해서 짊어지고 돌아옵니다. 아침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나무를 지고 나릅니다. 어느 날 반복되는 이 삶이 너무 고되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바닥에 나무를 내동댕이쳤습니다. 누워 하늘을 보며, 죽음의 신이 있다면 나를 데려가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늙고 병들었는데 왜 안 데리고 갑니까, 남들은 잘도 데리고 가는데 왜 나는 안 데리고 갑니까, 제가 무슨 죄입니까. 그 때 죽음의 신이 부르셨습니까.’ 하며 나타났습니다. 나무꾼은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지겨운, 괴로운, 생각이 모두 달아났습니다. 무릎을 꿇으며, “떨어트린 나무를 지는데 힘이 들어서, 도와 달라 불렀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우리 삶이 결국 다시 나무를 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반복되는 것처럼 지치고 고단해도 실제로는 죽음의 신이 나타나면 놀라는, 결국 죽는 것보다 살고 싶다는 것이 깊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이 생기면 한가지로 끝나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