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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드라마 |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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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8-01 14:34 조회8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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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다

눈이 부시게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렴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지난 2019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혜자 씨의 수상소감입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김혜자 씨는 이 드라마에서 갑자기 늙어버린 김혜자 역을 맡아 몸은 노인이지만 마음은 25살 청춘을 연기했습니다. 김혜자 씨는 우리나라 대표 배우답게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눈이 부시게>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된 드라마였습니다. 잠시나마 인생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시간을 과거로 돌리는 마법의 시계를 중심으로 한 시간여행이나 치매 노인의 생각이나 상상이 드라마의 주요 얼개지만, 드라마가 줄기차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별거 없는 하찮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지금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순간이라고 말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혜자(김혜자·한지민) 오빠 영수(손호준)는 거창하게 크리에이터라고 하면서 허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백수입니다. 영수가 하는 1인방송이라는 것도, “저거 왜 하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드는 콘텐츠뿐입니다. ‘자고 있는 할머니 안 깨우고 청양고추 먹기’, ‘48시간 잠자기등 이런 거 하면서 소중한 젊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짜장면 10그릇 먹기먹방을 위해서는 돈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전 여자친구네 가게서 짜장면을 열 그릇이나 시켰는데 한 그릇 밖에 먹을 수 없어 나머지 아홉 그릇은 반품하려고 합니다. 불어터진 짜장면이 반품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과거에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 친구의 오래된 감정을 소환해 거기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온갖 멋있는 표정은 다 지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자 친구의 주먹뿐입니다. 이어 여자 친구와 찍은 학생 때의 사진이 화면을 채우면서 과거의 멋있었던 시간과 지금의 찌질한 일상이 대비되면서 서글픔을 느끼게 합니다.

혜자 또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하는 일이라곤 미용실 하는 엄마를 도와 손님들 머리를 감기거나 빈둥거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선배 소개로 성인영화 더빙 알바를 마치고 와서는 심란해서 잠을 못 이루다가 술집 가서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나운서 꿈꾼 걸 후회한다, 그 꿈이 아니었다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이런 말들을 늘어놓으면 술주정을 합니다.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백수 동지인 오빠와 하루 종일 시시한 말싸움을 하고, 엄마 눈치 봐가며 밥 비벼 먹는 것이 그녀의 한심하기만 한 일상입니다.

친구들 또한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친구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고, 다른 친구는 편의점에서 알바 하면서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가수 꿈을 부여잡고 있으며, 혜자의 로맨스 상대인 준하는 혜자나 영수와 달리 스펙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 또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홍보관에서 노인들에게 사기를 치면서 젊음을 낭비합니다. 한심하게만 보였던 일상이었는데 그것이 축복이었다는 것을 혜자가 아빠를 살리기 위해서 시계를 너무 많이 돌림으로써 갑자기 늙어버린 후 깨닫게 됩니다. 혜자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기세입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혜자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25살은 사실은 혜자의 과거기 때문입니다. 지금 늙어버린 현실이 판타지가 아니라 25살 혜자가 치매 노인 혜자가 꿈꾸는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방송국 아나운서로 잘나가는 후배를 보면서, 종군기자가 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펴는 선배를 보면서 자신의 일상을 부정했던 그 25살이 사실은 가장 완벽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현재가 축복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갖고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드라마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