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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십대제자 | 엄하면서도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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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8-01 14:18 조회3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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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자식교육

밀행제일 라훌라

 

엄하면서도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애

 

라훌라의 말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사리불에게 라훌라의 머리를 깎아

출가를 시키라고 하시고는 라훌라는 잘 가르치도록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에게 진정으로 물려줄 만한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도를 닦아 깨치는 정신적이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많지만 가장 어렵기는 아마 자식교육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자식은 잘 가르쳐도 정작 자기 자식은 잘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자식을 가르치려면 부모로서의 정이 앞서 객관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잘 못 보기 쉽다. 거기에다가 자식에 대한 욕심이 생겨 가르치는 데에 조급함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버럭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낸다. 자식은 부모의 그러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항하거나 주눅이 들어 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식 가르치려다가 오히려 관계만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입시전문 교사이면서도 비싼 학원비 내면서 남의 손에 자식교육을 맡기는 것도 다 그런 이치이다. 자기 자식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오롯이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셨을까? 여기에 그 일화가 있다.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한참을 지나서 고향인 카필라바스투를 방문하셨다. 이때에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Rāhula)도 출가했다고 한다. 그 때 라훌라는 대략 12살 정도였다고 하는데 부처님에 의해서 사리불의 제자로 출가시켜 사미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 날 라훌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다짜고짜 저에게 물려주실 재산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때 라훌라는 열두 살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어머니가 되는 야쇼다라가 가서 그렇게 말씀드리라고 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속적인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오랫만에 만나는 남편이 무엇인가 엄청난 선물을 줄줄 알았는데 사문의 차림으로 법문만 하고 다니시니까 섭섭해서 라훌라에게 이렇게 졸라보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라훌라의 말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사리불에게 라훌라의 머리를 깎아 출가를 시키라고 하시고는 라훌라를 잘 가르치도록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에게 진정으로 물려줄 만한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도를 닦아 깨치는 정신적인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되는 정반왕은 손자 라훌라까지도 출가한 것을 알고는 무척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반왕은 나중에 어린 아이들이 출가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얻도록 하라고 부처님께 건의했고 부처님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셨다.

어린 라훌라는 억지로 사미가 되기는 했지만 아직 철이 없고 아버지가 부처님이며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앞세워 말썽을 꽤나 부렸던 모양이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를 불러서 대야에 물을 떠와 당신의 발을 씻기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라훌라가 물을 떠와 부처님의 발을 다 씻겨 드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대야에 발 씻은 물을 보았느냐? 못 보았느냐?”

! 보았습니다.”

그 물로써 밥을 짓거나 양치를 할 수 있겠느냐?”

다시 쓰지 못합니다. 이 물은 본래 깨끗했지만 지금 발을 씻어서 더러워졌기 때문에 다시 쓰지 못합니다.”

너도 이와 마찬가지다. 나의 아들이요 국왕의 손자로서 세간의 영화와 부귀를 버리고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뜻을 바로잡고 몸을 지킬 생각을 아니하고, 삼독의 더러운 때가 가슴에 가득 찼으니, 마치 이 물을 다시 쓸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하시고 대야의 물을 버리게 하고 나서 다시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대야가 비었으니 거기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못 담겠느냐?”

담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대야이며 깨끗하지 못한 것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너도 이와 같이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말이 성실하지 못하고 몹시 고집이 세어 정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일찍부터 나쁜 이름을 얻었으니, 대야에 음식을 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고 부처님께서는 발가락으로 대야를 굴려 밀치시니 대야가 몇 바퀴 굴러 가다가 곧 멈추었다.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대야가 부서질까 겁이 나느냐, 나지 않느냐?”

발 씻는 그릇은 값이 싸고 천한 물건이라, 조금 아까우나 그다지 아깝지는 않습니다.”

너도 이와 같이 사문이 되어서 몸과 입을 조심하지 못하고, 추악한 말로써 중상을 많이 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하지 아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껴주지 않으며, 몸이 죽고 혼신이 떠나서 삼도(三道)에 윤회 전전하여, 나고 죽고 괴로움이 무량하더라도,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이 애석해하지 않을 것이니, 이 또한 네가 대야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에게 이렇게 훈계를 하셨다. 엄하면서도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애로운 마음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이렇게 해서 라훌라는 마음을 잘 가꾸고 정진해서 나중에는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으며 당당히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라훌라가 이 한번 만의 훈계로 그렇게 훌륭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의 끊임없는 질타와 지도에 의해서 바른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궁궐에서 마음껏 뛰놀며 부족한 것 없이 고생을 모르고 자랐을 라훌라가 졸지에 사문이 되어 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주워온 천 조각을 기워 입고는 얻어온 밥으로 생활해야 하며 한창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에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면서 엄한 규율을 따라야 했으니 어린 라훌라의 마음고생이 엄청 컸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그런 사정을 훤히 알고 계셨겠지만 아들 라훌라에게 해탈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그런 고생을 시키신 것이었다. 라훌라를 진정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비록 자식이지만 출가시켜 세속의 영화보다는 궁극적인 진리의 열매를 맛보게 하셨던 것이다.

부모의 진정한 사랑은 자식을 행복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부처님이야 성불을 목적으로 출가하신 분이며 자식에게도 그러한 길을 걷도록 하신 것이 당연하겠지만 대다수의 재가자들은 어떻게 자식을 가르쳐야 할까? 자기 자식을 스스로가 가르치는 것 보다는 교육기관이나 다른 스승에게 보내어 가르치는 것이 한결 쉬울 것이다. 오죽하면 옛말에도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말이 있지 않겠는가?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기대 때문에 바른 교육이 될 수가 없고 자식 또한 부모에 대해 너무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르침이 제대로 전달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자식에 대하여 엄하고도 자상한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뿐인 아들을 밀행제일이라는 칭송을 듣는 훌륭한 아라한이 되도록 이끄셨던 것이다.

경전에는 이런 간단한 에피소드만 삽입되었지만 라훌라가 훌륭한 사문이 되기까지에는 지혜로운 부처님의 훈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일상생활에서 보여주시는 부처님의 훌륭한 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기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식들에게는 보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해서 그게 되겠는가? 자기는 책 한권 보지 않고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놀면서 자식들에게는 공부에 집중하라고 한들 그게 먹혀들어가겠는가? 총지종의 원정 종조님께서는 자식은 부모의 그림자라고 하셨다. 자식은 부모가 한 것을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된다. 부모가 성실하면 자식이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의 현대과학에 의하더라도 자식의 여러 가지 심적 장애는 부모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식이 잘되고 못되고는 단순한 가르침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의 지혜로운 훈육과 함께 성실하고 정직한 부모의 모습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자식은 내가 바라는 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식을 잘 가르치려면 우선 내가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들 라훌라 존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