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총지법장 | 법신, 화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08-01 14:14 조회495회

본문

법신, 화신

 

부처님의 성품과 행위로 달리 나투신 부처님 명호

비로자나, 원만보신 노사나, 천백억화신 석가모니

 

법신불은 본래 있어 보리심에 비유하고,

화신불은 닦아나니 보리행에 비유한다.

법신불이 중생 위해 당신이 곧 화신되니,

법신 부처 이밖에는 다시 부처 없는지라.

법신불은 태양 같고, 화신불은 만월 같다.

그러므로 법신명호 비로자나 대일이라.

밀교 본신 양인고로 현세정화 위주하며,

밀교본신 양을 쓰고 일요자성 날을 한다.

현세 안락 서원하여, 이 땅 정토 만들므로,

진호국가 서원으로 자기 성불하기 위해,

식재증익 경애항복 사종법을 수행하니,

국민 모두 안락하고 국토 모두 성불된다.

이것이 곧 오는 세상 몇 천겁을 기다려서

성불함이 아니므로 즉신성불이라 한다.

<종조법설집 P123~124>

 

시방 삼세에 두루 하시는 부처님 모습을 불교 교리에서는 삼신설(三身說)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신이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합니다. 법신의 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도 그리고 열반에 든 이후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존재하는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모든 중생은 형상을 통해서만 분별하고 짐작합니다. 형상 없는 법신을 중생은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법신은 영원불변하고 유일한 법을 부처님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보신은 법신과 같은 덕목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생의 간절한 서원에 따라 중생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내생에 그 중생을 제도하기도 하는 부처님이 보신불입니다. 화신은 보신과 같이 본래 법신의 부처님이지만 중생 제도를 위해 중생의 몸으로 바꾸어 직접 중생의 세계로 오신 부처님을 말합니다. 따라서 보신불과는 달리 중생은 현생에서 화신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분이 바로 화신의 석가모니 부처님이십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의 이름이며,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보신,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은 화신의 이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성품과 행위 나투심을 세 가지로 구분한 것입니다. 결국 본체는 하나인데, 체가 다르게 작용을 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에 따라 달리 표현을 한 것입니다.

종조님께서는 본래의 진리, 그 자체를 보리심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보리심은 본심이며, 불성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법신은 형상이 없으므로 중생제도를 위해 화신으로 오시므로, 보리행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또 법신불과 화신불을 해와 달로 설하셨습니다.

태양으로 인해 달이 나오고 빛을 냅니다. 태양이 없으면 달이 없다는 우주의 이치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본디 대일여래는 태양의 부처(비로자나 음역, 대일(大日))님이십니다. 태양은 양이며, 달은 음, 현세는 양이며, 내세는 음입니다. 그리하여 밀교는 사후세계도 중요하지만 살고 있는 현세를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종조님이 태양(대일)의 부처님을 섬기는 의미로 자성일을 중심으로 우리 종단은 현교와 다르게 모든 불사를 양력으로 지내도록 하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대중의 정서에 맞춰 사월초파일만 음력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현세를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현세 위주의 수행법을 통해 재난도 없어야 하며, 구하는 게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소구여의 불공을 합니다. 현교는 수억 겁을 닦아야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양의 법신불이 교주이므로 우리는 현세를 닦아 성불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교와 밀교사이에 보리심과 행위 육바라밀에 있어서나, 부처님의 과위(果位)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과위에 이르기 위한 방편에 있어서는 현교와 밀교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즉신성불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느 날 깨쳤다 하여도 그것은 온전한 증득이 아닙니다. 보림(保任)은 깨달아 부처가 된 이후의 수행을 말합니다. 깨친 후에도 과거 업이 사라지지 않으므로 자기의 몸과 마음을 면밀히 살피어 게을리 하지 않는 수행을 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