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의 땅 라즈기르(왕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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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6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5-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남혜정사의 위드다르마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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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5-12 15:52 조회 6회본문
교화의 땅 라즈기르(왕사성)
넷째날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하여 부처님께서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설하셨던 염화시중의 장소인 영축산과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림정사, 그리고 부처님 열반 후 500명의 제자가 모여 제1차 결집을 한 장소인 칠엽굴이 있는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라즈기르(왕사성)로 향하였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다섯비구를 교화하시고, 바라나시에서 부호의 아들 야사와 그의 동료 54명도 함께 제도하여 제자가 60명이 되었고, 부처님은 이들에게 “중생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두사람이 아닌 혼자서 가라”고 하시며 전도를 보내셨다. 그리고 인근 우루벨라촌에서 불을 숭배하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우루벨라가섭, 나제가섭, 가야가섭 3형제의 제자 각각 500명, 300명, 200명이 부처님께 귀의 하였으며, 사리불과 목건련 그리고 그들의 따르는 동료 250명을 교화하여 불교 교단의 초석을 만드셨다. 그리하여 1250명의 제자와 함께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을 교화하였으며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림정사를 세워 초기 불교 교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였다.
영축산은 높지는 않지만 돌로 이루어져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가 독수리를 닮았다하여 “신령한 독수리산”이라고 불리며 산 정상에는 ‘여래향실’ 법단이 있다. 여래향실은 “부처가 계시는 곳은 향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라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영축산 입구에는 걸인들과 호객꾼들이 많았으며 특히 염주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축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다 존자와 사리불 존자가 수행했던 동굴에 들어가 참배하였다.
여래향실 법단에 도착하니 이미 미안먀, 스리랑카, 티벳에서 온 외국인 스님들과 순례객들이 예불을 하고 있어 발디딜 틈도 없었다. 어디에서 불공해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순간 그곳을 관리하던 관리자가 우리를 여래향실 가장 앞자리에서 불공을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줘 여법하게 불공을 할 수 있었다.
영축산에서 내려와 마가다국 아사세왕이 아버지인 빈비사라왕의 왕위를 찬탈하고 가두었던 감옥터를 불러보고 죽림정사로 향하였다. 대나무숲에 건립되어진 죽립정사는 부처님께서 5안거를 머물렀던 곳으로 빈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기부한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죽림정사 가운데에는 스님들이 목욕을 하던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가란타 장사가 소유했던 곳이라 하여 가란타 연못이라고 불린다. 죽림정사 참배를 마치고 걸어서 칠엽굴로 향하였다.
칠엽굴은 산 정상부근에 있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더운 날씨에 위의를 갖추고 산길을 오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칠엽굴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온천 목욕탕이 있어 많은 인도인들로 북적였다. 온천에는 여러개의 목욕탕이 있고 남녀노소 가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목욕탕을 지나니 칠엽굴로 향하는 사람은 많지않았다. 인도인 가이드가 말하길, 본인이 인도성지순례를 약 1000번 정도 안내했는데 칠엽굴까지 올라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며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죽림정사를 참배한 후 산 밑에서 칠엽굴이 있는 곳만 바라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칠엽굴로 올라가는 길에 우리에게 돈을 달라며 따라오던 여러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가이드가 돈을 주면 안된다하여 돈을 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칠엽굴까지 따라왔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여 인도로 성지순례 올 때 가지고 온 간식을 소분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칠엽굴에 도착하니 순례객들이 칠엽굴까지 오지 않고 산 밑에서 바라만보고 가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칠엽굴은 크기가 작고 협소하며 어둡기까지 하여 여려명이 함께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이런 곳에 500명이 함께 들어가 1차결집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직접 와서 보니 칠엽굴이 진짜 이곳이 맞는지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칠엽굴의 참배를 마치고 내려와 점심공양 후 나란다 대학터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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