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불타인 내가 모두 건져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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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6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5-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왕생법문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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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5-12 15:37 조회 6회본문
부처님의 탄생일과 탄생연도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남방 불교권과 북방권의 날짜가 다르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일을 음력 4월 8일로 알고 이 날을 봉축하고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 등의 남방권의 불교에서는 베사카 달의 제8일 혹은 제15일을 부처님의 탄생일로 여기고 있다. 베사카 달은 대략 양력 5월에 해당되며, 그 달 가운데의 8일이나 15일에 베사카 제를 지내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한다고 한다.
어쨌든 부처님께서 화창한 봄날에 꽃이 만발할 때에 태어나신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언제 탄생하셨는가에 대한 기록도 명확한 것이 남아 있지 않지만 남방 불교 쪽에서는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대사(大史)>나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참고로 탄생연도를 추측한다. 대승불교권인 북방불교 쪽에서는 ‘중성점기설(衆聖點記說)’이라고 하여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부터 매년 점 하나 씩을 찍어 기록한 것이 있어 이것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불교학자들은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한 연도를 대략 기원전 566년, 560년, 그리고 466년과 463년의 여러 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중 기원전 566년 설을 인정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인데 이 설에 따라 계산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80년의 생애를 보냈으니까 입적하신 연도는 기원전 486년이 된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연도를 계산할 때 ‘불멸(佛滅) 몇 년’ 하는 식으로 부처님의 돌아가신 연대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서기를 예수 탄생의 연도로 기준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불기(佛紀) 몇 년 하는 것도 부처님의 탄생 년도가 아니라 부처님의 입멸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올해가 불기 2569년인데 이것은 1956년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입적하신 연대를 통일해서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삼고 세계 공통의 불기로 쓰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신 해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왜 돌아가신 해를 기준으로 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부처님 탄신 연도로 따지면 올해는 불기 2569년이니까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지는 2649년이 되는 셈이다.
부처님의 탄생설화와 탄생게
세계의 종교로 발돋움한 불교의 교조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은 그 분의 가르침에 대한 더욱 철저한 이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신화적인 부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등한시할 것이 아니라 신화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였다. 원래의 성인 ‘고타마’는 ‘가장 훌륭한 소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소를 신성시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이름으로서 석가족의 별칭으로 추측된다. 경전에 보면 ‘구담(瞿曇)이시여’ 하는 호칭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고타마를 한자로 음사한 것이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 혹은 ‘일체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친은 석가(釋迦;Śākya)족 출신으로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라고 하는 작은 나라의 왕이었다. 부친의 이름은 슛도다나[Śuddhodana;정반왕(淨飯王)]라고 했으며, 모친은 이웃 코리족 출신의 마야(摩耶;Māyā)라는 여인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삼촌이 백반왕(白飯王)이니 감로반왕(甘露飯王)이니 하고 불렸던 것을 보면 석가족은 유목민 계통이 아니라 쌀농사를 짓던 농경민족이 틀림없었다고 생각된다.
불전에 의하면 정반왕은 오래도록 아이가 없다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6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해서 태안에 드는 꿈을 꾸고서 임신했다고 한다. 마야부인은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가던 중 룸비니(Lumbinī) 동산에서 부처님을 출산했다고 경전에서는 전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현재의 네팔 카투만두 서쪽 200㎞ 지점에 있는 카필라바스투 근교에 있다. 룸비니라는 이름은 마야부인의 친정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동산을 만들어 주고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친정으로 가던 중 잠시 휴식을 취하던 마야부인이 아름답게 핀 무우수 나무에 오른손을 뻗는 순간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셨다고 한다. 태자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왕절개수술에 의해 태어나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부처님의 전기를 쓴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이 사성계급 중에서 왕족에 속하는 크샤트리아 계급이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인도의 신화에 의하면 바라문은 만유의 근원인 브라만(brahman)을 신격화한 바라문교의 최고의 신인 범천(梵天)의 머리에서 태어나고, 크샤트리아는 겨드랑이나 옆구리에서 태어나며, 평민은 무릎에서, 하층민인 수드라는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옆구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부처님이 왕족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吾當安之:온 우주에 내가 가장 존귀하니 내가 마땅히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멸하고 편안히 하리라)’라는 그 유명한 탄생게(誕生偈)를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록에서는 단지 사방을 둘러보다가 일곱 걸음을 걷고 탄생게를 외쳤다고도 한다.
탄생게의 내용은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대체로 천상 세계나 인간 세계를 통틀어 내가 가장 존귀하며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편안히 해주겠다는 의미이다. 빨리어 경전에는 “나는 세상의 최상(最上)인 자다. 나는 세상의 최존(最尊)인 자다. 나는 세상의 최고(最高)인 자다. 이것이 마지막 삶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도 되어 있다.
이 말은 부처님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 인간이 모두 그렇게 존귀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위대한 인간 선언이고 생명 선언이다 하면서 확대해석을 하는데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장면은 그저 진리를 깨쳐서 윤회의 속박을 해탈하고 무명에 가려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불타인 내가 건져주리라는 부처님의 탄생의 의의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탄생게를 외친 대목도 다분히 상징적인 신화적인 묘사이다. 방금 태어난 갓난동이가 일곱 걸음을 걸어 이러한 말을 외쳤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처님의 위대한 탄생을 묘사하기 위하여 불전의 작가들이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또 상징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육도 윤회, 즉, 여섯 종류의 윤회의 세계를 초월하리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일곱 발자국이라는 것은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의 세계,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탄생의미
부처님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쳤다는 탄생게 안에는 부처님의 탄생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우리 중생들의 괴로움을 덜어주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과 다름없다. 크나큰 자비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혜의 길을 일러 주신 것이다. 우리의 괴로움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엄청난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이 우리의 운명을 조작하거나 복을 주고 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스스로의 화복을 결정한다는 비밀을 알려주셨다.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종교가 태어났다 사라졌지만 불교와 같이 평화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종교는 없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나 지금 세상에서 자행되고 있는 테러들을 보면 불교가 얼마나 평화를 염원하고 실천하는 종교인지 알 것이다. 불교의 그러한 특징들로 인해 이제 불교는 아시아를 벗어나 전 세계 지성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떤 역사학자는 불교가 미래의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해낼 유일한 종교라고까지 말했다.
불교의 긴 역사를 통하여 볼 때 불교만큼 평화적인 종교는 없었다. 과거의 십자군 전쟁이나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의 갈등에서 빚어진 살육, 이슬람의 아시아 정복 과정에서 일어난 엄청난 파괴 등은 차라리 종교가 없었더라면 인간들이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게
한다. 다른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이와 같은 잔인무도한 행태들을 볼 때 모든 생명의 조화와 평화를 기원하는 불교의 우수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2569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우리 불자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활불교, 인간불교를 실천하여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사회적으로는 모든 구성원이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등불이 되도록 거듭 태어나자. 정성을 모아 등불을 밝히면서 부처님의 탄신을 봉축하고 우리의 마음도 환하게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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