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각하(照顧脚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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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6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5-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니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5-12 15:08 조회 7회본문
개인적으로 불교를 처음 만난 것은 70년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불교 학생회 회장으로 뽑힌 친구가 강제로 끌고가서 한 학기를 참석하였는데, 아마도 당시 대학에서 나온 불교 관련 서적의 내용을 가지고 교리공부를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발길이 뜸했는데 그해 말 겨울 수련대회에 다시 강제로 끌려갔다. 12월 25일경 3박 4일 일정으로 전라북도의 적상산 안국사로 간 수련대회는 가는 길도 비포장도로였고 당시에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기 전의 사찰이었다. 아침 저녁의 예불과 참선 그리고 1080배, 그리고 직접 나무를 쪼개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매우 빡센 일정이었다. 이 수련대회에서 무언가 내면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와 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전개되던 시기였고 개신교와 천주교가 이 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게다가 기독교는 19세기 말에 선진 문명의 이미지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고 산업사회의 경험을 가지고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무섭게 교세를 확장하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불교가 보여준 낡은 이미지와 전근대적인 모습에 회의감이 들면서도 불교의 교리가 주는 매력에 끌려 끈을 놓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기독교가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종교로 변화하면서 매우 극단적인 주장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불교가 한국사회의 지배적 종교, 나아가 국교의 지위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유일신을 섬긴다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가진 폐단에 물든 탐욕이라는 자각이 들면서 깊은 반성을 하였다. 무엇보다 휴전선 너머의 북쪽에 또 다른 유일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분단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배제가 아니라 공생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가능성을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보았다. 88올림픽 이후 템플스테이를 통해 외국인에게 한국 불교의 속살을 보여주었다면 점차 내국인에게도 불교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교박람회는 4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는데 2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그런데 관람객 중 20~30대의 젊은 층이 대략 70%이상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사실일까 검색을 하면서 현장을 찾은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보고 불교의 역동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는 현재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중심 교리인 연기(緣起)에 따르면 교리 자체가 현재를 지향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주어진 교리를 묵수(墨守)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세계를 끊임없이 인연생기(因緣生起)하는 것으로 보는 불교는 항상 현재를 강조한다. 현재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않는 관점, 즉 비결정론적 관점은 불교만의 특징이다.
송대(宋代)의 선승 오조 법연(五祖法演) 선사와 그 제자들과의 일화에서 비롯한 선문답의 하나로 조고각하(照顧脚下)가 있다. 발밑을 비춰보라는 뜻으로 발밑이란 바로 현재를 의미한다. 그런 불교가 낡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은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해당하고 젊은 세대는 불교가 오히려 현재적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불교는 세상을 지배하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의지처가 되도록 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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