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새해 불공 총본산 서원, 3년 만에 총지사 설단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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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12-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종조원정대성사일대기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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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12-05 12:19 조회 64회본문
1975년 새해 불공 총본산 서원, 3년 만에 총지사 설단불사
대성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대성사가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고 전한다. 남에게 신통을 자랑하거나 신비를 내세우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어떤 결정이라도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지혜의 폭과 깊이를 수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정사와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빙긋 웃으며 불공을 권하고 “법계가 드러내는 법을 따르라.”고 했지만, 앞을 내다보는 실마리를 주었다고 한다.
2차 대전의 종전, 일본의 패망, 남북의 분단, 한국전쟁의 발발과 북진 등을 예견한 일은 친족들이 생생히 기억하며 증언하고 있다. 늘 세계의 소식을 남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대비했던 일은 주변인들이 보고 아는 대성사의 또 다른 모습이다.
대성사의 혜안으로 오늘의 총지종을 이룬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종단 간판을 건 성북선교부는 건물이 좁고 종교적인 용도로 쓰기에 부적합하였기에 종단의 총본산이 될 만한 곳을 찾고 세워야 했다. 여러 곳이 거론되고 각각 이유와 이점이 있었으나 대성사는 당시에는 강 건너 멀고 먼 변두리 땅이었던 지금의 총지사 터를 점찍었다.
1960년대 초까지는 광주군에 속했고 총지사 터를 구입한 1975년까지는 성동구의 일부였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으로 배추밭과 과수원이 있던 황무지여서 지명조차 없이 영등포의 동쪽이란 뜻으로 ‘영동永東’으로 부르던 곳이다. 서울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면 막 개발이 시작된 영동 땅이 나오고, 구비구비 한참을 더 가야 역삼동 근처에 내릴 수 있었다. 주변은 논밭이라 비가 오면 진창길로 걸을 수조차 없었던 땅이고, 멀지만 인근에 버스 정류장이 생긴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말죽거리 윗방아다리라는 옛 지명을 가진 볼 것 없는 곳이었지만, 대성사는 이곳이 한국 밀교의 미래를 열 땅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1975년 새해 불공으로 총본산 건설을 서원하고 교도들의 힘을 모아 3월 28일 대지 328평을 매입했다. 그 후 인근 대지를 더 사들여 지금과 같은 터를 만들었다. 세상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후세에 가치가 남을 일을 행한다는 것이 어려운 길을 열어가는 이들의 특징이다. 역삼동 총본산 건립은 당대의 눈이 아닌 미래를 위한 행원으로 내린 결정이다.
총본산 건설은 대지를 다 확보한 5월 31일 기공식을 열었다. 이미 진각종의 전국 곳곳 심인당을 지은 경험이 있던 터라 대성사의 지시와 감수로 공사가 진행됐다. 자재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챙기고, 공정마다 잘 진행되도록 종단의 힘을 모은 덕에 건축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기공식 5개월 만에 대부분의 건물은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대성사는 공과 사에 엄격하여 건축을 맡은 이들은 늘 긴장을 멈추지 못했다. 평소 강조하던 말 때문이다. “공중의 일을 위하여는 생명을 바치고 사사로운 일에 이용하지 말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덕을 베풀고 자기의 이익은 취하지 말라.” 공사에 장난을 치거나 주어지지 않은 이득을 얻으려는 이들은 대성사의 이런 태도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10월 27일에 총본산 건물 옥탑에 대일여래 비로자나불의 지혜와 광명을 드러내 보이는 원상을 세우게 된다. 세상에 정통 밀교 종단의 위상을 펼쳐 보이는 외형적인 기반이 완성된 것이다. 공사가 진행될 때 대성사는 그곳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건축을 독려하고 마장이 없도록 수시로 불공을 올렸다. 치밀한 성품 그대로 어느 것 하나 어긋나지 않도록 살핀 덕에 원상을 올린 며칠 후인 11월 4일 교도들과 전국 스승들이 모여 본관 건물 상량식을 성대히 치르게 된다.
12월에는 총본산 마당에 불사에 동참하여 뜻을 모은 교도들의 정성을 새겨 성불탑을 세우고, 드디어 12월 27일 총지사 2층 서원당 불단이 개설되었다. 1978년 1월 19일 건축불사의 준공을 마치고 4월 18일 총본산 총지사의 설단 불사를 봉행했다. 이로써 천 년을 넘어 맥을 이은 한국 밀교가 다시 천 년을 이어갈 터전이 세워진 것이다. 명실상부 ‘생활 속에서 수행하고 수행이 생활이 되는 참된 도량’이 세상을 향해 넓은 품을 열었다.
대성사는 항상 총본산을 지키고 있었다. 1층 계단 아래 의자 하나를 두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늘 그 자리에 앉아 들고 나는 교도들을 지켜보고 격려했다. 급한 일이 일어나 총지사로 달려오면 달리 찾아볼 필요 없이 곧바로 대성사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구나 마음에 닥친 혼란과 생활 속에서 벌어진 소소한 일까지 마음속 사정을 대성사에게 털어놓으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잠시 생각에 들었다가 한결같은 가르침을 남겼다.
“무엇이든 간절히 법계에 물어보면, 감응이 있다. 밀교행자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심지를 지켜 법계의 응답대로 행해야 한다. 불공을 잘 드리면 마장은 걷히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니, 사람의 지식을 구할 것이 아니라 법계의 진리가 비추는 바를 따르면 될 것이다.”
그 말 말미에 넌지시 살펴 지켜야 할 바를 일렀다고 한다. 또한 현실의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는 마음을 닦아 인과로써 돌아보아 그 근본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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