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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대성사 밀교사관 계승과 과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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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9-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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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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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9-12 14:34 조회 2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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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원정 대성사 밀교사관 계승과 과제 (3회)

원정 대성사 밀교사관 계승과 과제 <3>

Ⅱ. 행장과 창종 이념

2. 창종 배경과 이념

1) 입교 전 불교수행 

원정대성사가 처음 접했던 불교는 1930년 일본 법화종 계통의 창가교육학회였다. 대성사는 이 단체에서 출판한 책과 경전을 전적으로 삼아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대성사가 하얼삔에 있었을 때 그곳에는 천태종 제43대 염허법사가 1924년 창건한 극락사가 있었다. 이것은 대성사가 일찍이 불교수학의 동기와 인연이 있었고, 훗날 일본의 진종과 진언종의 참회법회나 진언수행도 접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성사가 본격적인 불교의 종교체험을 하게 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고려대학교에 유학했던 장남 손순표의 행방불명이 계기가 되었다. 대성사는 아들의 안위를 기원하며 ‘나무 관세음보살’을 간절하게 염송했다고 전한다. 회당대종사와 대성사의 첫 만남의 기록을 전하는 것에서 대성사는 차에서 내린 대종사를 한눈에 알아보았고 대종사는 전란으로 깊어진 세상의 고통을 구하기 위한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대성사는 회당대종사와 함께 진각종의 체계를 세웠고, 다른 불교종단에서 볼 수 없는 혁신적 기획과 안목으로 미래 지향의 종단의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두 성인의 의기투합은 대성사가 회당대종사를 만나기 전부터 불교연구에 매진하고 실천수행이 경지에 이른 사실을 보여준다. 대성사는 출세간의 수행뿐만 아니라 공직에서 쌓은 실무경험이 있었고 영어, 일어, 중국어 회화와 독해에 능하였다. 특히 종단의 역경사업을 주도하였고 몸소 역경에 참여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문헌, 교리, 수행에 대한 상당한 지견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 창종과 역사관

회당대종사와 원정대성사가 공유한 시기는 1953년부터 1963년으로 약 10년간에 이른다. 두 성인은 한국불교의 기성 종단들보다 남다른 시대적 안목을 가지고 참회원을 거쳐 진각종을 일으켰다. 두 성인은 의기투합하여 교법·의궤의 체계화에 진력하였다. 대성사의 공직이력은 종단체계화와 미래지향적 설계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불교 종단이나 학파의 존립에 관해 대성사가 지닌 밀교사관을 볼 수 있는 것은 다음의 법설이다.


인도의 대승불교는 중관파와 유식파의 이파(二派)로서 철학체계를 수립하고, ‘나란타대학’을 중심으로 번영하였으나 양파 모두 밀교에 귀착하였다. 즉 일즉일체(一卽一切)의 완전한 조화의 세계의 이론적 실천적 실현이다. 가장 비근한 본능적 무반성 동물적 생활과 일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공리적 생활에서부터 윤리 도덕의 단계를 거쳐서 인간 의식과 자연현상의 발전 관계를 더듬으며 소승에서 대승으로 고양하면서 최후에 절대 조화에 도달하는 것이 밀교다.


대성사의 밀교사관은 현교의 역사관 전체를 아우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도불교 교단사를 살펴보면 석존의 입멸 후 백여 년이 지나 붓다의 초기교단을 지지하는 상좌부와 법 중심의 유연한 해석을 지지하는 대중부로 나뉘는 근본분열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인도불교 교단의 역사는 테라바다의 전통과 대승불교의 양 전통이 수레바퀴처럼 공존하고 있다. 특히 중관·유식의 양대철학이 밀교의 성립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인도 나란다대학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대성사의 밀교사관은 나란다대학의 전통대로 밀교 성립 이후 현교로부터 밀교로 이어지는 수행차제론(修行次第論)과 현밀겸수(顯密兼修)의 체계화에 동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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