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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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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11-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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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니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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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11-02 14:03 조회 3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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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의 종교

과학혁명은 산업발전 외에 철학과 심리학에도 영향

염송과 참선,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으로 진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점차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은 각종 통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조사는 2024년도에 예정되어있고,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팬데믹과 관련하여 만 19세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간소한 형태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종교가 없는 사람의 비중이 60%에 달합니다. 종교인구의 감소는 특히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유럽과 북미,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종교인구의 감소는 여러 가지 원인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출산율의 감소와 복지정책의 확대로 인한 종교 역할의 감소 등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출산율이 높고 복지정책이 부족한 지역은 여전히 종교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차 종교의 비중은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자연 현상 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도 예측 가능하도록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자연 현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을수록 인간의 생존능력이 높아지는데, 그러기위해서는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 역할을 근대 이전에는 종교가 담당하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과학이 그 역할을 가져왔습니다. 근대사회가 가능했던 사건을 얼마전까지도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꼽았는데 요즘은 과학 혁명을 들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부피가 많은 마지막 장의 제목이 과학혁명입니다.

 

과학혁명은 산업과 기술이라는 물질적 측면만이 아니라 인식론(認識論)과 같은 철학이나 심리학 등과 같은 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불교가 가장 뚜렷하게 영향을 끼친 분야는 심리학과 뇌과학 분야로, 특히 뇌의 가소성(可塑性)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불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세계관 내지 우주론이 존재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관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변화한 것은 과학의 발달에 따른 인식상의 변화인데, 우주의 구조를 특정한 중심이 없이 일종의 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은 불교적 세계관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에서는 종교가 사라질까요? 그러나 미래 사회에서도 종교는 여전히 남아있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도 종교처럼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틀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각각의 비중이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생(共生)할 것입니다. 근대의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관용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전보다 진일보했지만 관용은 여전히 선과 악의 이분법에 기초한 관점이고 세상을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입장입니다. 현대 사상은 그 중심을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적대적 공존이 아니라 상생적 공존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불교신자는 전인구의 1%라고 합니다. 미국의 인구를 35천만이라고 한다면 불교신자는 대략 35십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비롯한 명상(冥想)을 하는 인구가 대략 15%5천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은 명상을 불교와 연결시키지 않거나 설사 불교적 수행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기존의 자기 종교와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명상 수행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성격이 다른 두 종교가 어떤 갈등도 없이 한사람의 내면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지요.

 

루터교의 목사인 폴 틸리히(Paul Tillich) “모든 살아있는 종교의 깊이에는 종교 자체가 그 중요성을 잃어버리는 경지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모든 종교의 궁극에는 특정 종교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교리가 있다는 의미로 읽습니다. 틸리히의 말은 임제선사의 살불살조(殺佛殺祖)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자기 종교의 교조를 부정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불교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있기에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참선을 하면서도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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