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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지켜줬던 ‘옴훔야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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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5-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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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양재범 필자법명 - 필자소속 벽룡사 필자호칭 각자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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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5-08 11:10 조회 7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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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교도수행체험담 (4회)

아내를 지켜줬던 ‘옴훔야호사’

“3기이지만 거의 말기에 가깝습니다. 잘 견디면 일 년은 살 것이고, 운이 좋지 않으면 반년도 힘들 수 있습니다.”

암을 진단하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원체 자기 아픈 것이나 힘든 것을 티 내지 않았던 아내의 인내심에 처음으로 화가 치솟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으면서 왜 이제야 병원에 올 생각을 했는지 속에서 천불이 났습니다.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며 서둘러서 입원 병실을 알아보고, 의사가 하는 당부와 조언을 하나하나 수첩에 옮겨 적었습니다. 큰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스카우트 되어 왔다는 의사는 텔레비전에도 여러 차례 나온 암 전문 의사였습니다. 믿을 것은 부처님과 의사뿐이었습니다. 의사가 시키는 것을 무조건 따라서 아내의 건강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오직 아내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1인실로 입원수속을 했습니다. 다른 병실에 비해 고급스럽고 세련되어서인지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을 따지고 들 마음의 여력이 없었습니다. 입원 순서가 되기까지 통원치료를 하면서 1인실에서 나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세상을 등진 이들이었습니다. 아픈 아내를 돌보는데 지쳐서인지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차례가 되어 아내도 입원을 하였습니다.

입원을 한지 이튿날 밤에 아내의 혈압이 40까지 떨어졌습니다. 달려온 당직의사가 말하길, 치료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비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의사는 한 가지 방법이 있지만 몹시 망설여진다고 했습니다. 혈관에 주사를 꼽아서 수혈을 하면 환자가 못 견딜 게 분명하므로, 어깨에 구멍을 뚫어서 피를 쏟아 붓듯 넣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 심장에 무리가 가서 잘못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게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깨에 구멍을 뚫어서 피를 넣는 것이라도 제발 하게 해주세요.’

저는 염주를 든 채 애걸했고 탈진한 아내 곁에서, 일이 잘못되더라도 병원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서명을 하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새벽 내내 어깨를 통한 수혈이 계속되었습니다. 모두들 그 밤이 고비일 거라고 말했고,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심신을 억지로 깨우기 위해 커피만 하염없이 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옴마니반메훔 진언 외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밤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부처님 은덕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밤 10시가 지나면 난리가 났습니다. 밤마다 집사람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자기 머리채를 마구 잡아당기고, 목을 누른다면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제야 그간 봐왔던, 죽어서 병실을 떠나던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영혼들이 그 병실에 남아 있어서 약해진 아내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옴훔야호사가 퍼뜩 생각났습니다. 진언의 힘이 세서 귀신을 물리치는데 효과적이라는 걸 아주 오래 전 흘러가는 말로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옴훔야호사!” 외치는 순간, 머리카락 끝이 쭈뼛쭈뼛 서면서 진언을 더 이상 못 외우게 하려는 것처럼 입이 저절로 막혔습니다. 눈도 침침해졌습니다. 염주를 던지듯이 공격적으로 돌리면서 옴훔야호사를 반복하자 신기한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팔다리에 돋았던 소름도 가라앉고, 마음도 조금씩 진정되었습니다. 시야도 밝아졌습니다. 새벽 4시 즈음, 머리가 간지럽고 답답하여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을 겸 일 인실 내부의 화장실에서 샤워를 시작했습니다. 한창 샴푸 칠을 하고 있는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내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아내는 살려달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반 벌거숭이로 샴푸 거품을 뚝뚝 흘려가면서 밖에 나와서 염주를 돌리며 옴훔야호사를 외쳤습니다. 아내도 저를 따라 함께 진언을 외웠습니다. 그제야 아내는 겨우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날이 밝았습니다. 일단은 아내를 보다 안정적인 곳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같은 병실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호사를 불러서 병실을 옮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그러냐고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에 귀신들이 하도 많아서 집사람이 밤새 시달렸어요.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실을 곧장 옮겨야겠어요.’ 라고 말한들 간호사들이 알아 줄리. 만무한 일이죠. 그래서 막무가내로 병실을 옮겨 달라고 때를 썼습니다. 더는 그 방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랑이 끝에 겨우 다른 병실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병실에서 가까운 2인실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1인실보다는 시달림의 정도가 나았지만 그래도 아예 힘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몸이 약하다 보니 피를 순환시키는 힘이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도통 되지를 않았습니다. 회진 때마다 의사는 오늘이 고비일 수도 있다’, ‘힘들 수도 있다고 했지만 죽자 살자 옴마니반메훔과 옴훔야호사에 매달린 덕인지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끔찍했던 병실의 기운이 염려되어서 자리가 날 때마다 병실을 옮겼습니다. 2인실에서 4인실로, 4인실에서 6인실까지 내려갔습니다. 아내가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마음을 다해 진언을 외우고 염주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여 통원치료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처음에 아내의 어깨에 구멍을 뚫던 의사를 우연히 만났는데 저희 부부 내외가 아직도 병원에 있는 것을 보며 적잖이 놀란 눈치였습니다. 나중에서야 들은 말이지만, 의사들 상식으로는 아내의 상태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1년도 채 버티지 못할 게 틀림없었는데 4년 이상을 버티고 7년을 채우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습니다.

병든 아내의 수발을 들려니 아내 외의 다른 것들은 챙길 마음의 여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희사금도 제대로 생각해서 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호주머니에 만원이 있으면 만원을 내고, 오천 원이 있으면 오천 원을 내고, 어쩔 때에는 동전들을 다 털어 내기도 하면서 불공을 드리고 부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매 순간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패혈증을 이겨냈을 때는 만나는 의사마다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게 패혈증이라고들 했습니다. 그때는 그조차도 잘 모르고 그저 아내가 좀 더 살 수 있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암은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습니다. 림프를 타고 암세포가 움직이다 보니 재발이 계속되었습니다. 병원을 옮겨가면서 치료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복수까지 물이 차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을 빼낸다고 빼내도 소용없었습니다. 가는 병원마다 힘이 들겠다는 비관적인 전망뿐이었습니다. 긴 시간의 병원 생활로 지친 아내는 통증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의사들도 이미 아내에게 다가올 끝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통이 아내를 찾아올 때마다, 아내는 진통제만을 찾았습니다. 꼬챙이처럼 마르고 수척해진 몸으로 누웠음에도 온 병원이 울릴 만큼 커다란 목청으로 고함치듯 의사를 불러서 진통제를 놓아달라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만큼 아내의 고통은 심각했습니다. 내성으로 인해 보통의 진통제는 잘 듣지도 않았습니다. 강하고 독한 진통제가 투여되었고,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암세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내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독한 진통제를 맞고 나서 모처럼 곤히 잠에든 다음, 잠을 자는 것처럼 가만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를 보내기 얼마 전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꿈이었습니다. 택시에는 아내도 있었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아내의 숨이 끊어졌으니, 조상님들이 아내를 데리고 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조상불공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옴훔야호사 진언과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는 불공이 아니었다면 아내는 결코 기운을 낼 수 없었을 테고 제 곁에 그토록 오래 머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불공의 힘으로 저희 부부는 투병생활을 그나마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질병들이 존재합니다. 치료법을 찾지 못한 병도 많습니다. 혹시 어떤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보살님이 계시다면, 옴훔야호사와 옴마니반메훔에 보다 더 의지를 해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저와 저의 아내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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