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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스승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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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4-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함께 읽는 종조법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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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윤금선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작가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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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4-07 12:36 조회 6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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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사명

스승의 사명(使命)

 스승은 매일 교도(敎徒)와 접촉(接觸)하는 교화(敎化)의 제일선에서 활동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그 사명이 중차대(重且大)하고 따라서 종단(宗團)의 성쇠(盛衰)를 좌우(左右)함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스승은 세간고락(世間苦樂)에 초연(超然)하여야 하며 먼저 자기의 인생관(人生觀)이 확립(確立)되고 그러한 지표(指標)로서 생활하는데 그 스승의 인격(人格)이 완성되고 따라서 이해(利害)의 영욕(榮辱)에도 굴복하거나 동요(動搖)되지 않는 지조(志操) 있고 정의(正義)에 투철(透徹)한 모범적(模範的)인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모든 교도들은 그 스승을 신뢰(信賴)하고 존경함으로서 복전(福田)이 될 것이요, 일반이 흠모(欽慕)하여 교화(敎化)는 날마다 흥왕(興旺)하고 부처님과 일체(一切)중생이 다 가호(加護)할 것이다. 세속(世俗) 사람들이라도 수양(修養)있는 지성인(知性人)이라면 인생관이 서있고 생의 가치를 확립코자 하거늘 하물며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성직자(聖職者)로서 이러한 주관(主觀)이 없이 어찌 남을 제도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고 인류평화를 위한 지도자로 자처(自處)할 수 있겠는가. 대승보살(大乘菩薩)은 결코 관념적(觀念的)인 것이 아니고 생생하게 인생의 고락을 겪으면서 그것을 소재(素材)로 인격화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수행이기 때문에 오상성신(五相成身)의 불퇴전(不退轉)의 각오로서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청렴정직(淸廉正直)하고 스승을 잘 받들어 행하면 다른 자격이 여간 부족하더라도 교화가 잘 될 것이다. 종단은 민주주의나 어떠한 법의 조문(條文)보다도 부처님이 교시(敎示)한 법과 계율(戒律)에 입각하여 사제도(師第道)를 확립하는데 그 흥왕(興旺)함을 기할 수가 있다. 

헌신적(獻身的)인 책임(責任)과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고 남의 과실을 지적(指摘)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하여 화합(和合)과 단결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내 자신이 스승과 윗사람을 경멸(輕蔑)하고 대항(對抗)하면서 어찌 아랫사람과 교도들이 나의 뜻에 순종(順從)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인과법(因果法)을 무시하는 사견(邪見)이니 내가 스승을 경만(輕慢)한 것이 곧 반영(反映)되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 국가, 사회 또는 한 교단(敎團)이 흥왕하려면 그 지도자 중에 훌륭한 인물이 많이 있어야하는 것은 고금(古今)이 일반(一般)이므로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무상(無常)하나 법은 멸하지 아니하고, 현실은 전변(轉變)하나 진리(眞理)는 영원하며, 재물은 수유(須臾)에 없어지는 것이지만 명예와 인격과 덕망(德望)은 영원불멸(永遠不滅)하는 것이니, 이것을 잘 체득(體得)하여 개인의 이익보다도 공익을 위하고 자기형편이나 자기교화(自己敎化)에만 집착하기 보다도 종단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법을 세워가는 대아적(大我的)인 위치에서 현세정화(現世淨化)에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퇴전없는 정진으로서 종단의 유구(悠久)한 발전과 세계평화의 결실(結實)을 거두어서 우리 총지종(總指宗)의 입교개종(立敎開宗)의 정신이 중외(中外)에 빛나고 세계만방에 불일(佛日)이 증휘(增輝)하도록 하는데 훌륭한 역군(役軍)이 될 것을 서원(誓願)하여 마지않습니다. 


 불교총지종 ‘입교개종의 정신’에 이어 ‘스승의 사명’을 밝힌 것은 교화와 종단 발전의 근간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씀이라고 흘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간절하면서도 간곡하여 자못 숙연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마지막 유훈으로 남기시기를,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으라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을 통하는 법이다. 마음에 커다란 울림이 일거나 정신이 번쩍 나고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건 대부분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다. 스승 없이 깨우칠 수 있는 건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뿐이었다. 우리에겐 이미 부처님이 계시고 여러 훌륭한 선지식들이 계시니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좋은 길로 인도하는 선지식과 도반은 불도의 길을 감에 있어 전부라고 말이다. 지혜를 얻고 감화를 받고 마침내 발심 수행하여 성도하는 데 있어 스승은 절대적인 존재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바른 길로 인도하는 선지식도 있지만 순수한 불심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악지식도 수두룩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너무 좋아 신심 나게 절에 다니다가도 정작 스님이나 불자들에게 실망해 발길을 돌리거나 등져버리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불연을 맺어줄 수도 있고 안 좋은 인상을 남겨줄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부처님께 전법을 부촉 받은 진리의 사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불교 지도자는 물론이고 불자라면 다 같이 돌아볼 일이다.  

 원정 대성사께서는 총지종의 스승에게 중생의 귀의처이자 복밭으로서 바르고 확고한 철학과 인격과 덕망을 갖출 것을 요청하셨다. 깨달음을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결코 관념적인 것이 아니니 인생의 고락에서 해탈의 열매를 맺는 대승보살행을 강조하셨다. 보리심과 금강심으로 부처를 이루겠다는 오상성신의 서원을 분명히 하고 일상에서 겪는 번뇌와 망상들을 깨달음의 씨앗으로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에 입각하되 스승과 제자의 도리를 지켜 화합하고 공익과 종단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함께 머무르고, 다툼이 없으며, 서로의 뜻을 존중하고, 의견을 맞추고, 계를 같이 지키고, 보시물을 똑같이 나누는 청정승가의 육화합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스승과 교도가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여 총지종의 정신을 빛내달라는 지극한 당부의 말씀을 모두가 가슴에 새기면 좋겠다.    

                                                                                                     BBS 「무명을 밝히고」 「거룩한 만남」 윤금선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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