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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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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9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2-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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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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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2-07 14:42 조회 6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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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1)

근현대사를 통해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달, 그리고 부수적 영향으로서 환경파괴는 인류의 종교와 정신세계에 많은 과제와 변화를 종용하고 있다. 시대의 혼돈속에서 많은 지성들은 인류를 이끌 지혜는 오로지 불교에서 나올 것이라 판단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서양에는 숭산과 스즈끼에 의해 선불교가 소개되었고, 테라와다가 유행하였으며, 이외 많은 불교국가의 종파가 서구사회에 발을 들였다. 티벳불교는 불교보다 정치문제와 얽혀 국제사회에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티벳은 중공의 강점으로 1959년 나라를 잃고 인도에 망명하였으며 정치, 종교지도자인 달라이라마 14세가 지금까지 티벳인 망명사회를 이끌고 있다. 국제사회는 달라이라마에게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여나라를 잃은 티벳인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현대의 종교, 정신세계에 티벳불교가 중요한 이유는 방대한 불교문화에 대해 달라이라마 14세(본명 텐진 갸초, 이하 성하)를 중심으로 인도, 티벳의 고전문헌들을 제련하여 현대의 지식에서 반조, 승화하고, 인류가 나아갈 길을 선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 14세처럼 서구 사회에 많은 강연과 저서를 통해 불교의 해박한 사상과 사유, 자비를 전한 인물은 많지않을 것이다. 그의 설법이 간략하고 간결하며, 붓다의 자비사상은 청문자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고 서구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주된 배경은 나란다대학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불교철학의 발달된 사고와 논리학, 밀교수행에서 볼 수 있는 탁월한 심리학과 심성변화의 기술일 것이다. 달라이라마의 전통은 이미 기고한 바 있지만 달라이라마 14세 성하는 국제 불교계가 인류구원의 정신으로 불교의 나아갈 바를 제시해 온 중심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달라이라마 14세 성하는 그의 공식 홈페이지가 있다. 그의 출생을 비롯한 간략한 전기도 있으며 그가 해온 설법의 이력과 수상, 그리고 그가 매해 설법하는 일정들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달라이라마의 설법을 청문하고 싶으면 홈페이지에서 설법 일정을 파악하고 티벳정부 사무소에서 미리 접수 해두어야 한다. 또한 인도 내 티벳인 난민거주지일 경우 인도정부의 허락과 비자도 받아두어야 한다.

홈페이지의 전기를 요약하면 달라이라마 14세 성하는 1935년 7월 6일 암도지방의 딱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성하는 변덕스런 기후변화로 대규모의 농작이 불가능한 작은 규모의 농업을 꾸리는 가난한 농부의 부모 슬하에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이름을 ‘하모 된둡’이라 하였다. 형제자매는 모두 7남매로 성하를 포함해 4형제와 2자매로 이루어졌다. 

달라이라마는 어릴 때성정이 급하고 솔직한 편이었고 특별히 주목할 것이 없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릴 때 기억나는 것은 항상 앞장서서 짐을 싸고 여행가는 놀이를 좋아했으며, 언젠가 자신은 티벳의 수도인 라사에 갈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였다.

달라이라마 14세의 전생인 달라이라마 13세는 툽텐 갸초라 하였으며 1933년 5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달라이라마 13세의 입적 이후 그의 환생을 찾기 위한 탐색팀이 꿈붐사원에 도착한 것은 당시 하모 된둡이 2세 되던 해였다. 환생을 찾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여러 가지 징조를 참조하게 되는데 전생인 달라이라마 13세 유해의 얼굴이 남쪽에서 북서쪽을 향하였고, 특히 섭정인 고승은 깊은 선정을 통해 남 티벳의 하모 라초 호수에서 ‘아’, ‘카’, ‘마’라는 글자의 환영과 더불어 이어 황금과 터키석으로 이루어진 3층 법당의 사원, 그리고 언덕으로 이어진 길을 보았다. 또한 특이한 모양의 배수 시설을 얹은 집을 함께 보았는데 섭정은 호수의 글자 가운데 ‘아’자가 암도를 뜻하며, ‘카’자는 꿈붐사원의 머리자일 것이라 확신하였다. 탐색팀은 꿈붐사원에 도착해 3층 법당을 발견하고, 이어 어렵지 않게 근처에서 지붕에 노송을 꼬아 물이 흐르는 농가를 발견하였다.

탐색팀 가운데 께창 린뽀체는 시종의 복장으로 신분을 감추고 하루 묵을 것을 청하였고, 농가 하모 된둡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이는 께창 린뽀체를 보자마자, ‘세라사원의 고승’이라고 바로 지적하였다. 며칠 후 팀은 다시 달라이라마 13세의 유품을 가지고 와서 다른 물건들과 섞어 가려내도록 하였는데 하모 된둡은 바로 가려내고, ‘이것은 내거야’라며 말했다. 다른 여러 시험끝에 하모 된둡은 달라이라마 13세의 환생으로 인정되었고 이후 절차에 의해 꿈붐사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달라이라마 14세 성하는 당시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하였는데, 이때 그의 형인 롭상 삼뗀이 이미 출가해 함께 생활했고, 또한 그를 부모처럼 돌보는 승려가 늘 함께 있어 어렵지 않게 보냈다.

하모 된둡은 머지않아 가족을 만났고 형인 롭상 삼뗀과 탐색팀은 라사로 향하였다. 그러나 중국인으로 무슬림 군관이었던 마부펭이 막대한 뇌물을 요구하는 바람에 지체되었다가 1939년 여름 드디어 일행은 라사로 향할 수 있었다. 라사에 도착직전 수도에서 십리가량 떨어진 되구탕 초원에 정부관리가 마중나와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대대적인 환영식과 더불어 일행과 하모 된둡은 라사 서쪽에 위치한 여름 궁전 놀부링까궁에 안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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