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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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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11-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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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탁상달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시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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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11-10 14:01 조회 7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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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 이야기

성북동 길상사(吉祥寺)는 삼청각과 오진암과 더불어 당대 3대 요정이었던 약7,000여 평에 달하는 대원각을 자야(子夜, 본명, 김영한(金英韓, 1916~1999))가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여 세운 불가의 도량이다. 당시 금액으로 환산하였을 때, 약 1천억 원 상당의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을 아무런 조건 없이 ‘무소유’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야라는 인물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여자 몸으로 38선을 넘어 서울 피난을 와 당시 대한민국 3대 고급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을 설립(1953년)하여 한국 재력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백석 시인과의 연정에 대한 일화가 전해지는데, 백석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라는 시 제목에서 따와서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그녀에게 지어줬다고 전해진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인 ‘자야’와의 러브스토리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이나 듣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백석이 헤어진 자야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이다.

평생 백석을 애타게 그리며 살았던 그녀는 폐암으로 1999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1997년 12월 14일 길상사 시주를 받은 법정 스님은 창건 법회에서 그녀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법회에 참석한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그녀는 “저는 불교를 잘 모르는 죄 많은 여인입니다. 제가 대원각을 절에 시주한 소원은 다만 이곳에서 그 사람과 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떠나기 전 재산을 시주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라는 한 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천억 원 재산이 저에게는 백석, 그 사람의 시 한 줄보다도 못해요.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시를 쓰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죽으면 화장해 눈 많이 내리는 날길상사 경내에 뿌려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이 일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인 백석에게로 눈이 푹푹 내리는 날 백석에게 돌아가고 싶어 했던 마음을 전한 것이다. 다비식을 마친 그녀의 법명 길상화의 뼛가루는 길상사 경내에 하얗게 쌓인 흰 눈 위에 뿌려졌다.

길상이란 말은 길사유상(吉事有祥)의 줄임말이다. 다시 말해서 부귀와 행복 등 길함의 기운이 인간 현실에서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공덕주 자야의 청아하고 맑은 범종 소리를 흠모하는 수양 정신과 세상에 부끄럽지 않는 큰 자비심도 함께 담겨있다.

사찰에서 이 단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성불, 즉 깨달음을 통해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깨달음의 의미를 바로 새기고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가르침으로 승화된 용서와 화해를 나눔과 배려로 세상에 성불하는 깨달은 자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자 하는 것이다. 

우주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서 모든 의혹과 번뇌를 버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사람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이웃과 더불어 서로 양보하고 화해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시인, 전 동해중 교장 탁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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