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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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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3-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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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1 19:05 조회 4,6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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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13
밀교문화와 생활 38

중생은 때로는 가시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고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성품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를 자심, 화심이라고 한다. 자심은 가시와 같은 마음이고, 화심은 불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자심이나 화심과 반대되는 마음도있다. 이는 좋은 마음이다. 이를 수심이다. 이는 물같은 마음이다.


자심

자심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시와 같은 마음이다. 가시는 아픔을 동반하며 가시로 인하여 커다란 고통을 낳게 된다. 중생의 좋지 않은 마음을 가시에 비유하고 있다. 『대일경소』에서 자심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가시의 마음이라 하는가? 어느 곳에서나 악한 짓을 일어나게 하는 성품을 말한다. 가시나무의 무더기는 모든 곳에서 피해를 보게하고 방해하는 바가 많으며, 가까이 가는 자를 불안하게 한다.’

가시라는 표현을 통해 좋지 않은 마음,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즉 쓸데없는 근심 걱정과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경우를 말하는가.『대일경소』에서 다음과 같이 예를들고 있다.

‘예컨대, 큰 보시 등과 같이 좋은 일을 이미 행하고 나서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는 나쁜 일을 저지르고 나서 스스로 후회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거나 반대로 좋은 일을 해놓고도 공연히 후회하는 것이다. 후회되는 일을 해놓고서 후회하는 것을 질타하고, 좋은 일을 행하고 쓸데없이 걱정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나무라고 있다. 특히 선을 이미 행하고서 후회하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 보시를 행하고 나서 아깝다는 생각, 인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를 참회하고 좋은 일을 더 많이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언제나 나쁜 짓을 하고 나면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이것을 다스리는 방법은 만약 범하였으면 속히 참회하여 없애고,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또 ‘좋은 일을 행하였으면 스스로 기뻐하고 다행이라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좋은 일은 그것으로 만족이다. 후회는 없다.


화심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중생의 마음이 화심이다. 화심을『대일경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엇을 불의 마음이라고 하는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운 성품을 말한다. 불의 성질이 활활 타오르며 조급하고 빠른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 역시 그러하다.’고 하면서 급하고 사나운 중생의 성품을 불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착한 일을 행할 때는 잠깐 사이에 한량없이 많은 공덕을 이루지만, 악한 일을 지을 땐 역시 짧은 시간에 지중한 업을 짓게 된다.’고 하였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짓는 것은 한순간이오, 그 과보 또한 불꽃과 같이 삽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악업을 짓는 마음은 악화심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다스리는 법을『대일경소』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맹렬하고 폭악한 마음은 손상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깊히 생각하여, 부드럽고 유화한 자비선의 물로써 방편 삼아서 이를 소멸케 하는 것이 화심을 다스리는 수행이다.’

여기에 덧붙여, 적선하는 것이 곧 화심을 멸하는 법이라고 설한다. ‘좋은 일에 힘써서 언제나 오래가게 해야 한다. 이것이 화심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악의 화심을 멸하고 선의 수심을 일으켜야 한다.


수심

수심은 물의 마음이다. 물의 마음은 맑고 청정한 마음이다.『대일경소』에서 물의 마음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

‘무엇을 물의 마음이라고 하는가? 모든 착하지 못한 것을 제거하는 법을 잘 닦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설하기를, ‘물의 성질은 청결하여서 잠깐 온갖 더러움에 물들어도 이를 맑게 하면 곧 깨끗해지고, 또한 더러운 때를 씻어 없앰과 같이 이 사람의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고 하여 몸과 마음의 청정을 강조하고 있다.

계율이나 수행에 있어서 청정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은 없다. 청정에서 지혜를 일으키고 자비를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더러운 악을 드러내어 삼업의 중죄를 참회하여 씻고자 한다’고 하였다. 참회만큼 좋은 기도 또한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정하다, 청정하지 못하다’는 분별마저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고있다. ‘이것은 더러운 때이고, 이것은 깨끗하므로 나는 이렇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청정한 마음을 장애한다.’

청정과 부정을 분별하는 그 자체가 장애라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분별하는 마음없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소』에 이르기를, ‘다만 마음의 실상을 관하여 본래부터 더러운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헤아려서 스스로 온갖 덮여있는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그 마음을 다스리는 행이다.’

우리는 마음의 때를 제거하지 않는 한 지혜, 자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수행이라 할 수 없고 공덕 또한 얻을 수 없다. 때 묻은 천으로 아무리 좋은 옷을 지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언을 염송하며 마음의 때를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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