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倫廻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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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9-03-0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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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2 07:51 조회 4,3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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倫廻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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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해라고 말한다. 그래서 중생들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뜻과 같이 되지 않는다. 

왜일까!

그 까닭은 바로 인과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원히 고해라는 바다에서 헤엄 쳐 나올 수는 없는가?

아니다. 누구나 행복이 충만된 삶을 살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영원과 자재로움과 밝은 삶을 얻을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완벽한 해탈을 성취하셨고 우리들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셨다. 즉 삼세의 인과법을 말씀하셨다.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 자업자득의 진리를 믿고 내가 지은 업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받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 간다면 틀 림없이 윤회란 고해)에서 벗어 나서 복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상속이듯 전생은 금의 과거 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어제는 돌아볼 줄 알면서도 전생은 묵살하고, 내일은 기약할 줄 알면서 내생은 잊고 사는지 !

그것은 아마도 전생과 내생이 눈에 보이 지 않기 때문일게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순간에 너무 집착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자 명한 이상, 전생 .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는 반드시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세윤회는 인, 연, 업, 과의 넷으로 구성한 필연적 법이기 때문이다.

인연업과!

인(仁)은 씨앗이요. 연(緣)은 곧 씨앗 이 뿌려지는 밭이며, 업(業)은 뿌린 씨앗 을 가꾸는 행위이다. 이렇게 “인”과 “연” 과 “업”이 모이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영글어 지는 것이 “과(果)”이다. 씨가 좋고 밭 이 좋으며 농사를 잘 지었으면 복을 많이 받을 것이고, 나쁜 씨를 나쁜 밭에 뿌리고 게으름을 피웠다면 수확이 나쁜 것은 정 한 이치이다. 심은대로 거두고 지은대로 받는 것. 자업자득이요 선인선과이며 악인 악과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도리를 불자라면 누가 모를까만 실천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옛 말씀에 삼척동자도 알지만 팔십노인도 실천은 어렵다고 했다.

불자 여러분! 이것이 부처님의 간곡한 가르침이요, 불법의 진리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과거에 맺은 업을 푸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업을 만들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에 매듭을 풀 고, 푼 매듭, 즉 업을 더욱 원만하게 회향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새로운 악업을 맺어 서 더 많은 매듭을 맬 수도 있습니다.

맺느냐 푸느냐, 이는 오직 지금 이 자리 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물질적인 이익만을 탐하 여 모든 것을 상대적인 감정과 자존심으 로 해결하려고 하면 매듭만 늘어날 뿐입니다.

절의 뒷간에 가면 입측진언 “옴 히로다야 사바하” - 비우고 또 비우니 큰 기쁨일세, 탐진치 삼독도 이와 같이 버 려 한 순간의 허물도 없게하리라 - 라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버리기 어려우니 이렇게라도 해야 풀릴 것 같은 중생의 바램이라 여겨집니다.

인간은 한 번 움켜 쥐었다 하면 버리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괴롭다고 하면서도 못 버리는 것이 중생입니다.

불자 여러분! 허망한 탐욕으로 매듭지어 고해의 바다에 뛰어들지 말고 비우고 비워서 맺힌 매듭 풀고 윤회 고통에서 모두 해탈 하시기를 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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